[삶의 향기―이승한] 고난의 빛 기사의 사진

올해는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태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1509년 7월10일, 프랑스 노용에서 태어난 칼뱅은 마르틴 루터 다음의 종교개혁 2세대다. 그는 교황을 무오한 절대권력으로 추앙하던 가톨릭과 서구 사회의 종교 정치적 부패를 변화시킴으로써 종교개혁을 완성했다.

그는 명쾌한 문장력, 예리한 분석력으로 27세에 기독교 조직신학의 꽃이라 불리는 '기독교 강요'를 써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체계화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전적 타락,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항거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오래 참음)이라는 5개조의 신앙고백을 온 유럽에 전파했다.

당시 가톨릭과 교황에 맞서 종교개혁에 나서는 것은 죽음으로 행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칼뱅이 핍박과 고난이 따르는 종교개혁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근원은 무엇일까?

그의 신앙고백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에 의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타고난 육체의 결함이 그에게 '근본(성경, 하나님)으로 돌아가자(ad Fontes)'고 외치게 했던 게 아닐까? 칼뱅은 위장병 신경통 기관지천식 두통 등 온갖 병을 앓았다. 식사도 하루 한 끼 정도밖에 못했다.

자연히 그는 육체의 고난을 하나님 섭리 속에서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육체의 질병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들었고 육신의 허약함이 구원자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로 다가왔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의 십자가 고난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성경만이 진리임을 그는 육신의 고통이라는 어둠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프랑스에는 루터의 종교개혁 영향으로 개혁주의 신도들이 자라고 있었다. 위그노라 불리던 이들은 대부분 벽돌공, 미장이 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었다. 위그노가 당하는 종교적 핍박을 보면서 그는 개혁의 불꽃을 들불처럼 번지게 했다. 피신처인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카데미를 세워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실천하는 개혁주의 세계관을 가진 인재들을 배출했다. 하나님 중심의 교육이 유럽을 변혁시킨 파이프라인이 됐다.

사람은 가장 나약할 때 존재의 본질을 추구한다. 고난이 뼛속까지 밀려들 때 내면의 진정성을 보인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자아가 깨진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한 사도 바울이 고난을 통해 예수의 복음을 빛나게 했듯 칼뱅 역시 고난을 통과하면서 종교개혁을 이뤄냈다.

칼뱅 탄생 500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제네바시는 국제 심포지엄과 축제를 연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장로교단들과 칼뱅기념사업회 등이 다양한 기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칼빈(칼뱅)주의연구원은 3월부터 10월 말까지 경기도 분당에 있는 세계 유일의 칼뱅박물관을 일반에 공개한다고 한다. 칼뱅 기념사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성경으로 돌아가는 재정향' 운동이 확산되길 기대한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모두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던 칼뱅이 오늘의 경제 난국을 보면 뭐라 말할까? 40년간 그를 연구해온 정성구 칼빈대학교 석좌교수의 입을 통해 들어본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가장 이상적인 제도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무절제하고 불로소득을 꿈꾸며 철저한 인본주의와 유물주의 세계관에 빠져 있었습니다. 금융위기는 돈의 흐름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의 탐심과 도덕적 타락에서 기인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서로 나누고 섬기며 사랑할 때 고난은 축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승한 i미션라이프 부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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