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20) 미국인 교회 ‘영어 기도’ 준비로 힘든 나날

[역경의 열매] 신경림 (20) 미국인 교회 ‘영어 기도’ 준비로 힘든 나날 기사의 사진

그런데 어느 목사님이 나보고 옆방으로 가라고 했다. 남자 목사는 안수받으면 교역자회에서 발표하고 함께 축하해 주고 즉시 목사라고 부르는데, 나에게는 "사모라는 호칭이 더 편하시지요?"란다. 뒤에 들리는 말로는 내가 안수를 받는 걸 보고 다른 사모님들이 따라 할까 겁난다고 하는 목사님들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 교회의 교인 중에 어떤 이는 나에게 자신이 꾼 꿈 얘기를 했다. 꿈에 하나님을 봤는데 너희 교회 사모는 왜 남편 자식 다 팽개치고 자기 할 일 하러 가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사모가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위스콘신 케노샤에서 미국인 교회에 부임하기 직전 마지막 주일에 나는 남편에게 부탁해 남편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100년 전에 미국 사람들이 선교사로 한국에 갔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에 더 많은 문제와 아픔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더 잘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저를 미국인 교회에 선교사로 보낸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남편 교회 교인들은 그후 나를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미국 교회에 가서는 또 영어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던지. 우선 영어로 기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기도에 쓰이는 영어는 일상 영어가 아니었고, 기도하다 문법 틀렸다고 다시 할 수도 없는 노릇. 거기다 목사라고, 아무 때나 어떤 상황에서나 대표 기도를 해야 하니 정말 힘들었다.

부임한 첫해 성탄절이 다가왔다. 교회에 출석 못하시는 노인들을 양로원이나 집으로 방문하기로 마음 먹어 주일날 광고를 했다. 화요일에는 그분들 심방을 하려 하니, 혹시 내가 모르는 분들 있으면 알려 달라고. 그리고 나는 기도문을 하나 준비했다. 상황이 다 같으니 한 가지 기도면 될 것 같았고, 정신이 맑지 않은 분들이니 서로 목사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대조할 수도 없을 것 같아서.

그랬는데 화요일 아침 교회에 도착한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교인들이 함께 심방가겠다고 모여 있었던 것이다.

이 교인들 있는 데서 같은 기도를 여러 집에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 와서 심방을 취소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일단 첫 집에 가서 준비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두번째 집 가는 동안 죽어라고 다른 기도를 준비했고, 계속 다음 집으로 가며 새 기도를 준비했다. 속 모르는 교인들은 차 속에서 자꾸 영어로 말을 시켜 내 작업(?)을 방해했다. 일곱번째 집 심방을 마쳤을 때는 나는 탈진 상태였다. 성도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우리 목사님의 기도는 정말 은혜스러워. 기도가 설교 같아." 그러나 그 다음해부터는 광고 안하고 몰래 심방 갔다.

또 한번은 장례식 예배를 인도하게 됐다. 나는 당시 미국 장례식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갑작스레 닥친 장례식이라 제대로 준비할 수도 없었다. 교회에 들어섰더니 예배당이 조문객들로 꽉 차 있었다. 고인이 도시의 유지라서 사람들이 많기도 했지만, 아시아 여자 목사가 미국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도 작용한 것 같았다. 시작하는 예문을 읽다가 얼핏 눈을 들어 앞을 보고는 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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