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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손수호] 5만원권 그림구경


6월부터 선보이는 5만원권 지폐에는 초상 1점과 회화 4점이 등장한다. 앞면에는 신사임당(1504∼1551) 초상이 오른 쪽에 큼지막하게 배치되고 왼편에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묵포도도(墨葡萄圖·간송미술관)'와 '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동아대박물관)이 도안으로 사용됐다.

신사임당 얼굴은 이종상 화백이 그렸다.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그는 수묵 중심의 전통화단에서 드물게 채색화를 그리는 작가다. 37세 때 5000원권의 율곡 에 이어 34년 만에 그 어머니까지 그렸으니 현존 화폐에 초상 두 점을 남기는 진기록이다. 육척 장신과 활달한 성품에 카리스마가 있고, 독도지키기 등 사회운동도 활발하다. 새 초상화가 표준영정과 딴판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화폐에서 좌우대칭은 금기여서 옆으로 약간 각도를 틀면서 생긴 일"이라며 일축했다.

왼편의 '묵포도도'와 '초충도수병'은 인물과 짝을 맞추기 위해서다. 사임당의 진작(眞作)을 두고도 굳이 전칭작(傳稱作)을 쓴 것은 화폐의 사회성에 맞추려는 실용적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탐관오리를 꾸짖는 '수박과 들쥐'를 돈에 넣기는 곤란했을 테니까. 이에 비해 포도그림은 주렁주렁 열매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화폐용으로 적합하다. 먹의 농담으로 열매와 잎, 줄기 등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어 사군자 다음으로 애용된 소재다. '초충도수병'은 검은 비단에 색실로 자연을 수놓은 여덟폭짜리 병풍인데, 이 중 일곱번째를 장식한 가지 그림이 점지됐다.

이번에는 돈의 뒷면. 어몽룡(1566∼?)의 '월매도(月梅圖·국립중앙박물관)'가 선명하고 이정(1541∼1622)의 '풍죽도(風竹圖·간송미술관)'가 엷게 깔렸다. 어몽룡은 충청도 진천 현감을 지낸 선비화가로 조선중기 매화 그림의 절창으로 꼽힌다. 그림에서 보듯 매화나무의 헌 가지는 꺾이고, 새 가지는 하늘로 치솟아 생명의 순환을 노래한다.

이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왕실 출신이다. 임진왜란 때 왜병의 칼에 오른팔을 상한 뒤 왼손만 사용하면서도 대나무 그림에서 일가를 이뤘다. 그의 '묵죽도'는 바위 주변에 자생하는 대나무 모습을 생동감있게 묘사했다. 돈 속의 그림은 웬만큼 즐겼으니, 진짜 돈을 취할 일만 남았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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