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21) 내 엉터리 영어 설교에 오히려 은혜

[역경의 열매] 신경림 (21) 내 엉터리 영어 설교에 오히려 은혜 기사의 사진

수백 개의 눈동자가 모두 순서지를 안 보고 나를 보고 있는 거였다. 호기심으로 확장된 낯선 사람들의 눈동자 사이에서 난 낯익은 교인들을 눈으로 찾았다. 그랬더니 우리 교인들의 눈은 걱정으로 더 커져 있었다.

"아시아 여자 목사, 백인 교회 목회하다 도망가다."

이런 기사가 신문에 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하나님,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불안해하는 나에게 교인들이 다가오더니 이런 독창적인 장례식은 처음 보았다고 기뻐했다. 전통적인 장례식을 몰랐던 것이 '독창적'이었다는 칭찬을 듣게 만들었다. 몇몇 분은 자기네들이 죽으면 내가 어디 있든지 꼭 와서 집례를 해달라고 해 장례식 예약(?)을 받기도 했다. 하나님은 위기 때마다 살려주셨다.

나는 그때까지 학교 외에서는 영어를 배운 적이 없었다. 처음 미국 갈 때는 접시 닦으러 갔으니 영어 배울 필요없다 생각했고, 그후로 무료 강습을 받고 싶었지만 차가 없어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영어로 목회를 하게 되니 꼭 영어를 정식으로 배워 목회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임원회 때 내가 근처에 있는 대학에 가서 영어를 좀 배우겠노라 했다.

성도들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대였다. 내 엉터리 영어가 매력이니 그걸 잃으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러며 덧붙이기를 내 영어 억양이 익숙지 않아 자기들이 졸지 않고 열심히 설교를 듣기 때문에 은혜를 받고 있다고 했다. 결국 영어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하고 난 워싱턴으로 떠났다.

이제 워싱턴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할 때 얘기로 다시 돌아가겠다.

위스콘신 주에 있을 때 게렛신학대에서 박사 과정 입학 허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게렛대는 그때까지도 나를 기다려주었다. 워싱턴으로 이사를 가면서 한편으로는 아깝고 아쉽기도 했다.

워싱턴에 가보니 내가 목회할 교회는 없고 그래서 공부를 해볼까 하고 신학교를 알아보았다. 철학박사 과정이 있는 곳은 가톨릭신학대뿐이어서 나는 감리교 신학대인 웨슬리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공부가 목적이 아니었으니, 어떤 학위든 배울 수 있으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그런데 이 무렵에도 나를 비난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 난리를 치고 안수 받았으면 목회를 해야지, 왜 남편 따라 가느라 목회를 접었느냐고."

내가 그리 쉽게 목회를 포기하면 앞으로 나올 여자 목사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슬펐다. 내가 목회할 때는 남편 내조 제대로 안 한다고 비난하고, 이제 남편 목회를 위해 내 목회를 접고 이사 오니까 왜 자기 목회 안 하느냐고 비난하고….

그래도 게렛신학대학원 은사였던 로즈마리 켈러 교수님은 나에게 "네가 워싱턴으로 가는 것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하며 용기를 주셨다. 나는 어쨌든 다시 학생이 됐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남편이 목회하는 한인 교회 청년들을 지도했다.

청년부에는 웨슬리 석사 과정에 다니는 미국인 학생이 있었다. 중고등부 전도사로 우리 교회를 섬기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이 어느 날 내게 난데없이 웨슬리에서 '공동체 학장(Dean of Community Life)'을 뽑는 데 지원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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