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22) 경험 쌓으려 지원서 냈다 신학교 학장 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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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교 점심시간에 박사과정 학생들과 담당 교수와 식사하는데 그 미국인 학생이 다가오더니 나에게 아예 지원서를 내미는 게 아닌가. 옆에 있던 교수가 나보고 지원해 보라고 부추겼다. 이렇게 지원하고, 이력서 쓰고, 잘하면 인터뷰하고, 그런 것도 좋은 경험이 되어 다음에 도움이 된다고.

경험 쌓으려 지원서를 내고 몇 주 지나니 총장실에서 전화가 왔다. 총장님이 만나자고 하신다고. 총장님은 자신이 두 통의 편지를 받고 나를 만나야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설명해 주셨다. 듣고 보니 한 통은 남편 교회 전도사인 학생이 보낸 편지였고, 다른 편지는 점심시간에 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지원해 보라던 내 담당 교수가 보낸 거였다. 두 사람 모두 "신경림 이력은 형편없지만, 좋은 사람이니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게렛의 로즈마리 켈러 교수도 내가 박사과정 입학 때 웨슬리 총장님께 전화해서 신경림이라는 학생이 가는데 잘 키워 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던 것이 생각나더라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됐고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설명해 드렸다.

며칠 뒤 총장 비서가 전화했다. 90여개의 이력서를 받았고 3명을 최종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나라고. 난 박사과정 학생일 뿐이었다. 학장을 할 만한 이력이라곤 눈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에게 비서는 1주일에 한 명씩 인터뷰하는데, 인터뷰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라고 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나의 대답은 "난 그렇게 오랫동안 말할 수 있는 영어가 안 되는데요." 비서는 웃으며 그럼 안 하겠느냐고 했다. '아니지, 이게 얼마나 좋은 경험이 될 텐데'라고 생각하며 나는 마지막 주로 정해진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첫 주가 지나니 순식간에 학내에 소문이 퍼졌다. 인터뷰한 교수가 다른 학교 교수인데 너무 훌륭하다는 얘기였다. 두번째 주엔 훌륭하긴 하지만 먼저 사람이 더 낫다는 말이 떠돌았다.

마지막 주 내 차례가 왔다. 하루종일 계속 다른 사람이 들어와 영어로 인터뷰를 하는데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겁이 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잃을 것도 없었기에.

총장님은 이틀 뒤에 연락을 주셔서는 2주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2주 후에 다시 전화를 하시더니 한번 보자고 하셨다. '만약 붙었다면 축하한다고 말씀하셨을 텐데.' 총장님께 찾아갔다.

"당신에게 두 주를 더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은 두 사람이 욕심나서 다 뽑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교수회의와 이사회를 거쳐 한 명은 학장으로 다른 한 명은 부학장(Associate Dean)으로 하기로 했어요." 그럼 혹시 내가 부학장? 너무 좋아 정신을 못 차리는데 총장님은 나보고 학장을 하겠느냐고 하셨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두 명의 특성을 보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셨고, 인터뷰했던 다른 사람도 그렇게 동의했다는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국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신학교 학장이 되었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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