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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동 칼럼] 전여옥 테러와 국회의 폭력시범

[한석동 칼럼] 전여옥 테러와 국회의 폭력시범 기사의 사진

의사당을 여의도로 옮긴 지 30년이 더 됐는데 국회는 변한 게 없다. 국회의원들의 권위는 바닥으로 내려앉거나 소멸해버린 느낌이다. 세상이 천지개벽을 했지만 국회에서만큼은 구악이 원형 이상으로 진화해 보존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 중에서 필히 우선순위 몇 손가락 안에 들 적폐로 싸움질을 빼놓을 수 없다. 소모적 정쟁과 직무유기쯤은 점잖은 축에 들고, 조폭들을 부끄럽게 하고 남을 폭력이 난무한다. 법을 만드는 곳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게 집단난투, 점거난동이다.

선거 때 낮고 낮은 자세로 한 표를 읍소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 그들은 직·간접의 오랜 경험칙에서 유권자들의 건망증을 꿰뚫고 있다. 그래서 국회의사당의 무법천지는 집권 경험이 있고 없고와 무관하다. 정권 교체로 공격과 수비 위치만 교대하면 여·야당의 이전투구 질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국정 경험을 이쯤에서 공유해 국가 발전을 도모할 것도 같은 낌새는 도대체 없다.

며칠 전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국회에서 어느 민주화운동단체 회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때 민주화운동 판정을 받은 1989년의 부산동의대 방화사건 재심을 목표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일부 개정할 법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통상의 '조폭국회'와는 달리 외부 집단에 의해 국회 회기 중 대낮에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이 입법활동과 관련해 집단폭행을 당한 것은 전례가 없다. 가해자측은 손가락으로 눈알을 빼버리겠다는 등의 험담을 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전 의원은 각막 손상 등에 따른 전치 3주 진단이 나와 엿새째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가 쇼를 하고 있다는 저주에서는 그 황폐한 심성에 절망을 느낀다.

재심 추진은 타당하면 타당한 대로, 잘못된 행위면 또 그런 대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껄끄러운 사안이어서인지 대다수 국회의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한나라당의 일부 여성의원이 '테러' 진상규명을 촉구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몇몇 야당 의원은 고소해하듯이 막말을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 잦은 방탄국회, 바꿔 말해 죄지은 동료 의원을 불체포특권 장막 뒤에 피신시켜주느라 열정을 쏟았던 그들이 어째서 이렇게 조용한가. 의도하지 않았을 뿐이지 전 의원 피습은 그런 동료 의원들 스스로 일반인의 폭력, 나아가 불법 거리집회·시위까지 우습게 국회에 끌어들인 측면이 없지 않다. 결코 적지 않은 의원이 각양의 언어폭력과 신체격투 시범을 반복해온 결실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사건에서 또 다시 보는 기막힌 광경 하나는 '민주주의' 간판만 붙이면 무엇이든 정당화되다시피 하는 풍토다. 국회의사당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난장판을 벌이는 마당에 민주주의 역행이니 하는 외침은 왜 줄창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의 민주주의가 통하는 곳이 더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하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있지만.

미디어 관련 4개법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거쳐 100일 뒤 표결처리하기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했다. 일단은 다행이지만 진작부터 그럴 일을 갖고서 왜 그 난리를 쳤는지 묻고 싶다. 물론 최종합의까지는 첩첩산중이다. 여야, 이익집단, 관계기관들의 잡다한 계산과 동상이몽은 이제부터가 시작임을 알린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법과 제도보다 주먹이 더 가깝고 커 보인다. 지루한 샅바싸움만 하다 원점에서 활극이 재연되지 않을지, 찝찝한 예상이 빗나가면 좋겠다.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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