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23) 가족들 한마음 응원에 부총장직 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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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처음 주어진 임무는 2박3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을 맡는 것이었다.

너무 난감했다. 나는 사실 미국에 와서 학교 두 군데를 '옆문'으로 들어간 사람 아닌가. 오리엔테이션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오리엔테이션위원회를 조직해 경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간신히 첫 임무를 감당했다.

학장 일을 하면서 나는 박사과정도 충실히 이행해야 했다. 낮에는 학교에서 일하고 집에 가서는 밥하고 설거지하고 다시 학교 사무실로 가서 새벽 2∼3시까지 논문 쓰고 그러기를 매일같이 반복하다 보니 눈 깜짝할 새 졸업식이 다가왔다.

졸업식 날. 웨슬리에서는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를 때 박수를 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내 이름을 부르니 교수며 학생이 다같이 소리 지르며 기립박수를 쳤다. 손님들은 영문도 모르고 일어났다.

나도 놀랐지만 우리 남편이 더 놀랐다. 미국 사람들이 나를 그 정도로 응원해줄지 몰랐던 것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확신이 안 서는 가운데 4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총장님은 나에게 부총장을 맡기고 싶다 하셨다.

부총장. 정말 엄청난 일이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고 치지만 부총장직을 맡을 능력이 있는지는 신중히 생각해봐야 했다. 그리고 사실 난 그때 학장으로서의 생활이 익숙했다. 일상에 젖어들 무렵 또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니 기쁘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충실하고 싶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그간 아이들에게 소홀했다는 자책감이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가 고민을 털어놨다. "학교에서 부총장 하라는데 엄마는 안 할까 싶다."

"엄마, 왜요?" 아들이 물었다.

"엄마가 너희들한테 너무 못해줘서 미안하고. 너희 과외활동할 때 엄마가 못 데려다준 것도 늘 마음에 걸렸고. 이제는 너희들한테 잘해주고 싶구나."

"엄마, 나 같으면 부총장 할 거예요." 뜻밖의 대답에 놀라 되물었다. "왜?" "엄마가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요? 나 같으면 할 텐데 왜 안 하세요?"

"내가 너희들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엄마, 이제 내가 운전할 나이가 다 됐어요. 동생은 제가 데려다주면 되죠. 엄마 그냥 부총장 한다고 하세요."

우리 딸 예지는 한술 더 떠 "엄마, 언제 총장 돼"라며 애교를 떨었다.

듣고 있던 남편은 "신경림 컸구만"이라며 애들의 말을 거들었다. 의아해하는 내게 남편은 "당신이 언제 준비돼서 일 시작한 적 있어? 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보내고 거기서 도와줘서 일한거지. 근데 이젠 준비가 됬는지 안 됐는지 스스로 결정하겠다고?"라고 말했다.

"그래 맞아. 여태껏 하나님이 일을 시키시고, 감당하게 하셨는데 이제 와서 내 마음대로 결정하면 안되지…."

그렇게 해서 한국 여자로선 처음으로 미국에서 신학교 부총장이 되었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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