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24) 남편이 일러준 ‘싸움닭’ 교훈 차별 대응 방법에 전환점

[역경의 열매] 신경림 (24) 남편이 일러준 ‘싸움닭’ 교훈 차별 대응 방법에 전환점 기사의 사진

남편은 감신대 출신으로 한국에서 안수받고 미국에서 미연합감리교회 목사로 봉직하고 있다. 교회는 워싱턴의 록빌 메릴랜드라는 곳에 있다. 내가 있는 학교와 35분 거리다. 집은 그 사이에 있다. 남편은 결정적인 순간 나에게 필요한 얘기를 해줬다.

위스콘신 주에서 미국교회 목회할 때 내 마음에 쌓인 게 너무 많았다. 한국 사람들이 나를 차별한다는 게 늘 억울하고 분했다. 사람들이 싫었고 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싸움닭 알아? 싸움닭을 만들기 위해 일반 닭을 훈련시키잖아. 어느 정도 훈련시킨 다음에 다른 닭이랑 대련시키지? 그때 막 먼저 공격하면 다시 데려다가 더 훈련시켜. 그런 후 다시 대련시켜 보고, 또 먼저 공격하면 더 훈련시키고.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하는 줄 알아? 가서 먼저 공격하지 않을 때까지래."

생각해보니 모든 것에 불만이 많았다. 특히 성차별에 화가 났다. 나도 남자들과 똑같은 자격을 갖춰 목사가 됐는데 늘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게 억울했다. 차별은 불의이므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떠나갔다. 싸움닭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 사사건건 문제삼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그 다음부터 싸워야만 하는 일과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때가 아니면 뒤로 미루기도 하는 여유를 갖게 됐다. 사람들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내가 내 속의 다른 나를 발견하고 놀라워 했듯이 남편도 나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미국에 갔을 때 운전을 못했다. 미국에서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사회활동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면허증이 없으면 수표도 쓸 수 없다. 남편은 목회를 하느라 바빠서 운전을 가르쳐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독학으로 면허시험을 준비했다. 교회 청년들에게 운전면허 관련 책자를 빌려 공부한 뒤 필기시험에는 붙었다. 실기가 문제였다. 두 달 안에 실기를 봐야 면허증이 나오는 데 독학은 무리였다. 남편은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저 동네를 한 바퀴 돌았을 뿐이다.

다음날 심방이 있었다. 집을 떠나며 나는 남편에게 내가 운전하겠노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남편은 그러라고 했고, 왕복 1시간이 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 다녀왔다. 남편은 놀랐다. 내가 12차선인 큰길로 나가면 무서워하며, 다시는 운전하지 않겠다고 할 것을 기대해 운전하라고 했는데 멀쩡하게 갔다 왔다는 것이다. 사실 난 무섭지 않았다. 옆에 지나가는 다른 차들을 쳐다 봤다면 무서웠을 텐데, 그럴 여유도 없어 앞만 보고 운전했기 때문이다.

내가 신학교에서 한 과목을 청강하면서 공부를 시작한 것에 대해서도 같은 얘길 했다. 내가 중간에 포기할 줄 알았다고, 끝까지 갈 줄은 몰랐다고…. 남편은 사실 나와 참 다르다. 충청도 사람인 남편은 여유로운 편이다. 사람답게 사는 걸 좋아하고 아등바등 사는 걸 내켜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아내가 있었는데 미국에 오니 아내는 없어지고 신학생이 생겼네." 내가 신학교 다니며 정신없이 살 때 남편이 한 말이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기도 했다는 남편이다. 남편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겠지만 이젠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준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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