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진영] 해고된 그들은 어디에 기사의 사진

"그동안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잠시 쉬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겠습니다." "지난 금요일 사직했습니다. 그간 보살펴주신 후의 잊지 않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의 김△△입니다. 이제 좀 쉬어야 할 때가 됐나 봅니다. 저는 떠나지만 앞으로도 ○○을 계속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함에 잇따라 날아든 '고별인사'다. 발신자는 대부분 민간 기업 홍보분야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다. 기자와 사원, 기자와 대리·과장으로 만났던 인사들이 어느덧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됐다. 그리고 하나 둘씩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수년 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특히 올 들어서는 지난 몇 년간 느끼지 못했던 강한 퇴출 바람이 불고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문분야로 인식돼 온 홍보쪽이 이 정도면 다른 부문은 형편이 어떨지 불을 보듯 뻔하다.

누구든지, 언젠가는 조직에서 떠나야 한다. 그러나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니 마음이 착잡하다. 그것도 황망하게 자리를 비우는 모습을 보니 '하루살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이들 대부분은 말 그대로 '졸지풍파(猝地風波)'를 당했다. 쫓겨나기 직전까지도 조직을 위해 몸을 던졌기에 배신의 아픔은 더욱 쓰렸을 것이다.

국내 굴지의 L그룹 A 상무는 지난달 중순 나와 점심 식사를 한 다음날 짐을 쌌다. 부하직원 1명과 함께 식사 자리에 나온 그는 회사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잔뜩 나타냈다. 자신의 회사가 세계적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한 외국기업과 다투고 있는 내용을 회사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그 다음날, 그가 잘렸다는 얘기를 후배로부터 전해들었다. 하루 뒤의 운명도 모르고 앞만 보고 뛰었던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

금융관련 협회 B부장은 회장이 불러 올라갔더니 내일부터 회사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보스를 지극정성으로 모신 홍보맨으로 업계와 기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너무 충격이 커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고 털어놨다.

한 외국계 금융회사의 임원은 회의 도중 불려나가 30분 안에 짐을 싸고 떠나라는 해고 통지를 받았다. 회사 출입증과 회사 계정의 메일 접근은 즉시 차단됐다. 동료들과의 작별 인사는 고사하고 짐을 꾸리는 시간도 빠듯했다.

그나마 기자인 내게 자신의 해고 사실을 알릴 정도면 형편이 괜찮다.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했기에 당장의 끼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전문성과 경력이 있기에 또 다른 자리를 찾을 가능성도 높다.

이들 외에 통계수치로만 잡히는 수 천, 수 만명의 중소기업 직원이나 비정규직들의 퇴출은 더욱 비참하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해고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살 걱정에 앞길이 아득하다. 퇴직금과 위로금은 고사하고 밀린 급여라도 받고 쫓겨나면 다행인 경우가 많다.

계절은 봄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겨울이다. 봄다운 봄이 선뜻 올 것 같지 않다. 정 나눌 것이 없다면 온기라도 나누면서 이 겨울을 이겨내야겠다. 먹먹한 가슴을 어느 정도 가라앉혔을까. 실직한 지인들에게 조만간 밥이라도 한번 사야겠다.

정진영 편집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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