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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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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ta sund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라틴어 법언이다. 나라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선 사람들끼리의 약속인 법과 계약이 지켜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평소 들어왔던 평범한 말인데도 갓 대학생이 돼 법학개론 시간에 라틴어 섞인 강의를 들으니 꽤 유식해지는 기분이었다. 미디어법안들 처리에 관한 여야 합의가 안 지켜질지도 모른다는 말들이 있어 40여년 전에 받은 수업이 생각났다.

여야는 미디어법안들을 둘러싸고 물리적 충돌까지 겪은 끝에 지난주 여야가 동수로 추천하는 20명의 민간인 위원으로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하여 100일간 논의한 뒤 표결 처리키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법안들에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언노련 등 시민단체들이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물론 합의 당사자인 여야 정당 내에서도 볼멘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내 강경파와 보수 세력들은 절대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이 소수 민주당에 발목을 잡혀 논의를 국회가 아닌 민간인에 맡기고 처리를 미루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느냐고 불만이다. 그러나 이는 야당과 시민단체들 들으라고 짐짓 하는 얘기일 뿐 심각한 것 같진 않다. 한나라당도 당초 법안들을 상정만 한 뒤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하겠다면서 야당에게 논의와 표결에 응하라고 촉구해왔는데, 그게 거의 100% 관철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법안 상정을 봉쇄하기 위해 여당과 물리적 충돌까지 불사했으나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에 백기를 든 꼴이 됐다. 이에 따라 미디어법안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당내 문방위원 등 강경파들은 합의 무효 주장과 함께 지도부 인책론을 펴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미디어 발전 국민위원회'로 명명된 논의 기구가 제대로 구성되고, 기능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양쪽의 입장 차이가 너무도 현격하기 때문이다. 또 이 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이 합의대로 표결 처리에 응할지도 걱정된다. 게다가 외곽 단체들의 민주당에 대한 압력이 거셀 것이다. 민주당 강경파는 벌써부터 국민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다시 저지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몰라도 합의 당사자인 민주당은 '논의 뒤 표결처리'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물론 국민 여론을 유도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토록 노력하는 거야 말릴 수 없지만 논의기구에서, 또 여야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표결에 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선 국민의 심판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유·불리를 떠나 약속은 지켜져야 하며 누구나 어떠한 이유로도 자유의사에 따라 한 약속을 파기할 경우 국민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한나라당도 '표결 처리'가 합의됐다고 해서 모든 걸 수로만 밀어붙여 자기 주장을 100% 관철하려고 해선 안 된다.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안팎이 미디어법안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방송 참여 범위의 제한 등 한나라당이 양보할 의사를 비쳐온 사항들은 계속 유효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끝으로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도 가능하면 논의기구에 참여해 자신들의 주장을 국민과 여당에 설명하고 관철시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민주국가에서 의회가 국정 논의의 유일한 장일 순 없으나 그 중심일 수밖에 없고 또 이견이 있을 경우 다수결밖엔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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