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박양우] 삶은 디자인이다 기사의 사진

10여 년 전 스포츠 관광 관련 국제 회의가 있어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다. 평소 도보로 시내 관광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지라 걸어서 시내 곳곳을 누볐다. 지금도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 공원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다. 공원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새롭다.

외국의 관광을 홍보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도 도시 공간을 아름답게 조성하는 일에, 나아가 삶의 현장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려는 것이다. 최근 공공 디자인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무분별하게 난립한 가게 간판 정비부터 공공기관 건물 내외의 공간 단장, 그리고 공원 등 주변환경 정비에 이르기까지 공공 디자인의 필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디자인 하면 으레 미술 장식의 한 분야로서 응용미술을 연상하거나 제품 디자인을 떠올린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수출이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동안 산업 디자인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이것은 우리 수출 전략에 엄청난 발전을 주었다. 어느 정도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소비자는 좋은 성능을 가진 제품을 넘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디자인이다. 최근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이나 LG 등 우리나라 제품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제품의 성능 못지않게 뛰어난 디자인의 덕이다.

그러나 요즘 디자인에 관한 생각들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작금에 세계적 경제 한파로 잠시 주춤하고는 있지만 소득이 높아지고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크게 높아진 것이다. 단순히 공산품의 기능을 보강하는 모양내기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전반에 스며들어 그 삶을 풍요롭게 하고 품격을 높여주는 삶의 디자인 시대가 된 것이다. 다수의 문화인류학자들이 정의하듯 문화는 삶의 총체적 양식이라고 할 때 삶의 디자인은 결국 문화의 디자인인 셈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더 이상 제조산업의 부수적 장식품이 아니다. 그 자체가 문화적 현상이자 문화 상품이다. 디자인은 대표적인 창조산업이자 콘텐츠 산업이기도 하다. 이른바 세계 선진국들이 디자인 산업을 진흥시키는데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는 것도 이 같은 디자인의 특성과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자동차 디자인 등 산업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던 영국이 1990년대부터 디자인을 창조산업의 대표 주자로 삼아 국가 발전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것이 비근한 예다. 이제 디자인은 그 자체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콘텐츠이자 모든 문화의 저변을 받쳐주는 문화의 바탕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에 대한 시각과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아니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문화의 총아라 할 수 있는 디자인 산업은 저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산업디자인의 틀을 넘어 모든 디자인을 아우르는 문화 디자인 육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경주하자. 공공 디자인 진흥에 관한 법률은 부처 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금이라도 디자인 진흥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일에 국회와 정부가 모두 나설 일이다. 정말로 문화로서의 디자인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할 의지가 있다면 점증주의 예산 관행 또한 극복해야 한다. 구호 제창은 그만하고 확실한 디자인 산업 진흥 의지를 행동으로 보일 때다.

박양우(중앙대 교수·예술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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