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27) 총장의 신학교 세계화 제안에 “왜 또 저죠”

[역경의 열매] 신경림 (27) 총장의 신학교 세계화 제안에 “왜 또 저죠” 기사의 사진

나는 지금 총장과 이전부터 함께 일해왔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 현 총장이 총장 선거에 나가기 전 나에게 입후보 여부를 물었다. 나는 "안 하겠다"고 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선거에 나가는 건 어떻겠느냐"고도 물었다. 나는 "당신이라면 정말 잘할 거다. 내가 전적으로 지원하겠노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현 총장을 전임 총장 밑에서 20년 동안 훈련받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총장 중의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총장이 됐을 때 나는 말했다. "당신을 잘 돕고 싶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못하는 부분을 내가 돕고 싶다. 당신이 원한다면, 남들이 총장에게 감히 못하는 말들을 내가 당신에게 직접 하겠다. 대신 당신도 나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달라"고.

우리의 파트너십은 그렇게 맺어졌다. 그 언약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느 날 총장은 내게 "10년 후, 20년 후에도 우리 신학교가 리딩 신학교로 남아 있으려면 뭘 해야겠느냐"고 물었다. "생각을 안해봤는데 총장님이 생각이 있으신 것 같으니 말씀해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신 부총장이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을 해보세요"라고 했고,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하라는 말씀인가요"라고 되물었다. "그건 나도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걸 바로 부총장님이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지금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이제부터 이 일에 전념해 주세요."

또 새로운 과제다. 당장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왜 또 저죠"였다. 총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당신이 거기에 특별한 소명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라고 신중하게 대답해줬다.

당시 세계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신학교는 거의 없었다.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은데, 왜 또 나일까요, 하나님?' 난 세계화도, 선교에 대해서도 관심 없었다. '아는 것도 없고, 이 일을 맡으면 세계 곳곳을 다녀야 할텐데 가족과 남편, 교회는 어찌 해야 하나요, 하나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그때 어린 시절 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를 다닐 즈음, 나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목사가 될 생각이 아니었으니 의료 선교를 생각했지 싶다. 의대를 갈까 했지만 시체 해부 얘길 듣고 무서워서 마음을 바꿨던 기억도 났다.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내 꿈을 잊어버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안 잊어버리셨구나. 그간은 준비 과정이었구나.'

만일 한국에만 있었다면 목사 안수도 받지 못했을 나를 미국까지 와서 안수 받게 하시고, 신학교에 들어가게 하시더니 신학교에서는 공동체 학장직을 맡겨주셔서 다른 교수들과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시고, 또 부총장이 되게 하시어 전국의 교회들과 관계를 맺게 하시더니, 이제는 세계로 내보내시려는구나.

이날이 11월11일, 한국에서는 11월12일, 내가 50세 되는 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니 일단 배워야 했다. 도대체 지구촌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미연합감리교 총회가 열리는 장소에도 갔다. 그곳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감독님들에게 우리 학교가 추진하려는 일의 취지를 밝히고,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했다.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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