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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조용래] 오자와 이치로


버트 랭커스터와 알랭 들롱이 열연한 이탈리아 영화 ‘레오파드’(1963)는 19세기 중엽 통일전쟁이 한창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이 배경이다. 조국 통일과 부패한 귀족 지배로부터 해방을 외치는 가리발디의 혁명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그 와중에 수십대에 걸쳐 시칠리아를 통치해온 살리나(랭커스터) 공작 가문은 몰락의 길에 들어선 반면 그가 아끼던 조카 탄크레디(들롱)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장교로 출세한다. 영화는 귀족시대의 몰락과 신흥 부르주아의 등장을 대비하되 살리나 공작의 절망과 허무에 초점을 맞췄다.

뜬금없이 옛날 영화를 꺼낸 것은 일본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 때문이다. 오자와는 2006년 4월7일 민주당 대표 취임 연설에서 살리나 공작의 독백을 들고나왔다. “변함없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어 그는 “저 자신이 먼저 변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뉴 오자와론’이다. 그는 1969년 27세 때 중의원 의원이던 아버지의 급사로 선거구를 물려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40대에 자민당을 쥐락펴락하는 정계 거물로 성장한다. 91년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선출과 93년 내각 불신임안 처리는 사실상 그가 주도했다.

93년 자민당을 탈당한 뒤에도 신생당·신진당·자유당을 창당하는 등 끊임없이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주도해왔다. ‘뉴 오자와’란 권모술수 정치꾼의 전형처럼 비치는 이미지를 털어내겠다는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의 변신 노력 덕분인지 지난달까지만 해도 오자와는 가장 유력한 차기 일본 총리로 꼽혔다.

2006년 이후 아베 신조-후쿠다 야스오-아소 다로 총리로 이어지는 자민당의 거듭된 헛발질 정치가 그를 띄운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그는 차기 총리는커녕 정치생명마저 위태롭게 됐다. 8일 교도통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오자와의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 9단 오자와가 과연 이번 위기를 이전처럼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하지만 살리나 공작이 탄크레디의 예쁜 신부와 왈츠를 멋지게 추고 난 뒤 쓸쓸한 표정으로 무도장 문을 나서는 레오파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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