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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문일] 김현희와 하스이케


'칼의 노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아내가 결혼했다' 같은 한국 소설을 일본에 소개한 사람은 하스이케 가오루라는 번역가다. 21살이던 1978년 고향 니가타의 앞바다에서 북한공작원에게 납치됐다가 2002년 45살에 돌아왔다. 24년간의 북한 억류생활에서 익힌 한국어가 귀국 후 생활의 자산이 됐다. 북에서의 직업은 사회과학원 민속연구소 자료실 번역원.

2005년 '칼의 노래'를 '고장(孤將)'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앞에는 강대한 적이 있고 뒤로는 못난 임금의 질시를 견뎌야 했던 이순신의 모순과 고독을 '외로운 장수'라는 제목으로 포착한 센스며 번역문도 유려하다. 요미우리신문은 서평에서 번역 후기를 두고 "문필가의 탄생"이라고 썼다.

하스이케씨를 비롯한 일본인 납북 생존자 5명과 가족들이 자유의 몸이 된 데는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북한에서 '이은혜'라고 불리는 일본 여성으로부터 2년간 일본어를 교육받았다고 자백한 게 실마리가 됐다. 이은혜가 일본 해안 지역에서 자주 일어난 실종사건의 피해자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 후 일본정부는 북한으로부터 '이은혜가 다구치 야에코라는 납치 일본인이며 1978년 납치돼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유골은 호우로 유실됐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현희와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 오빠가 어제 부산에서 만났다. 김씨가 지난 1월 일본 NHK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다구치씨가 살아있다고 확신하며, 힘이 될 수 있다면 가족과 만나고 싶다"고 말한 결과다. 김씨의 일본어는 유창했지만 경상도식 억양이 있었다. 김씨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가짜가 아니라고 거듭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가 KAL기 폭파사건 조사결과를 의심했고, 자신이 진범이 아니라고 주장한 책까지 나온 데 대해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일본인 납치피해자들의 사정도 간단하지 않다. 이들이 북한 비판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을 불만스러워하는 여론이 있다. 하스이케씨는 '납치 후 공작원으로 일본에 침투해 다른 일본인을 납치하려다 실패했다'는 주장이 주간지에 실리기도 했다. 납치자의 가족들은 북에 뺏긴 가족을 뺏어 오겠다는 의지로 '탈환(奪還)'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정작 탈환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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