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경림 (31) 바위도 변화시키는 시냇물 힘 굳게 믿어

[역경의 열매] 신경림 (31) 바위도 변화시키는 시냇물 힘 굳게 믿어 기사의 사진

지난 가을 매우 소중한, 하나님의 보너스와 같은 은혜를 체험하게 됐다.

연세대학교로부터 한 학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웨슬리 신학교 일도 있고, 가족도 있고, 남편 교회 일도 있어서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초청을 받고 보니 받아들이고 싶었다. 왜냐하면 엄마 생각이 나서다. 지금 92세. 혼자 살고 계신다.

나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으며, 아직도 내가 중요한 강의나 설교를 하는 시간에 꼭 깨어서 기도해주시는 엄마. 이젠 연로하셔서 언제 어떻게 되실지 몰라 늘 불안했다. 결혼 후 한 번도 곁에 살지 못해 한이 됐는데 만일 내가 이 초청을 받아들인다면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웨슬리 신학대학원에서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조건으로 나의 한국행을 받아들였다. 남편 교회인 워싱턴 감리교회 교인들은 "어머님 때문이라면 우리가 양보해야지요"라고 이해해줬다. 아이들은 "우리가 아빠 돌볼게"하며 나를 보내주었다.

결혼한 뒤 한국에서도 살았지만, 한 번도 추석에 친정에 가지 못했다. 32년 만에 찾아갔을 때 엄마는 "내 평생에 가장 기쁜 날이었다"라고 하시며, 기차역까지 굳이 따라 나오셨다. 극구 말리는 나와 택시기사님에게 엄마가 말씀하셨다. "얘는 이 역에서 어떻게 기차 타는지 몰라요. 내가 태워줘야 돼요."

한국에서의 시간은 내게 정말 특별했다. 강화와 강릉 등 조국의 바닷가를 찾아가 내가 좋아하는 바다와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었고, 내 조국을 맡아 줄 젊은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격려하고 도전하고 도전받을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선물로 주신 연세대학교에 깊이 감사드린다. 모교인 감신대에서는 총여학생회가 '닮고 싶은 자랑스런 선배에게 주는 상'을 처음으로 만들어 나에게 줬다. 큰 감격과 책임감을 동시에 안겨줬다. 제발 좋은 선배가 돼 달라는 부탁일 테니까.

언젠가부터인지 나는 큰 장애물에 부딛히면 시냇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커다란 바위에 비해 시냇물은 한없이 약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 바위에 시냇물은 맞서지 않고 조용히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흐르며 자기의 길을 가서 마침내 바다, 그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시냇물은 작은 힘이지만 결국은 바위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아직도 그 목적지가 어딘지 모른다. 그러나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다.

왜? 우리 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한 뒤 딸을 낳아 고민하다가 "자신은 어찌 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실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기로 했다"고 하셨던 것처럼…. 나도 하나님이 아실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상민이, 예지, 사위인 마이클과 며느리 코니,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걱정 하지마. 다 알지 못해도 괜찮아. 하나님이 아시니까." '주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정리=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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