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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조용래] 개살구 인턴


“푸른 열매가 익어갈 때 참살구 아닌 그 개살구의 양은 보기만 하여도 어금니에 군물이 돌았다.” 이효석의 단편 ‘개살구(1937)’의 첫 대목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오대산자락의 박달나무가 값이 뛰면서 돈벼락을 맞은 김형태는 첩실을 들이는 것으로 위세를 부렸다. 살구나무집의 서울댁도 형태의 두 번째 첩이었다. 살구나무집은 마을 유지로 급부상한 형태를 부러워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지만 속내는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서울댁이 형태의 아들과 눈이 맞으면서 집안은 엉망진창. 마을사람들에겐 형태네 사연이 안줏감으로 전락했는데도 형태는 뇌물을 써서라도 면장이 못 돼 안달이고….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다. 요즘 청년실업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인턴사원이 꼭 그 격이다. 공기업과 중소·대기업은 물론 관공서의 행정인턴까지 쏟아지고 있다. 근무기간은 3∼6개월에 불과하고 보수도 월 100만원 안팎이 고작인 인턴을 마치 일자리 창출의 획기적인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원래 인턴은 ‘내부에 있는 자’라는 뜻으로 말하자면 입주해서 전문적 능력을 배우는 견습생을 칭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턴과정을 밟는 수련의가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한 발 나아가 인턴은 학생들이 재학 중 혹은 졸업 후에 전공이나 미래의 커리어와 관련된 분야에서 취업체험을 하는 것으로 자리잡았다.

말하자면 인턴은 노동과 체험 사이의 존재다. 인턴을 견습생이란 측면에서만 보면 무급이 마땅하나 견습 과정에서 어느 정도 근로행위가 벌어지기 때문에 최소한의 임금지불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일은 정규사원과 같이 하면서 견습을 앞세워 최소한의 급료만 지불하는 경우다. 그것은 노동력 착취와 다르지 않다.

인턴은 비정규직 근로자보다 못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인턴을 거친 후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가 주어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인턴 만능주의식 발상은 경계돼야 한다. 인턴으로라도 채용해 당장 일할 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인턴 10만명 시대’ 운운하는 것은 주객이 뒤바뀐 것 같아 입맛이 쓰다. 개살구도 맛들일 탓이라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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