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희망의 길,한국교회가 만든다] 지역아동센터서 안정 찾은 소망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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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학원 갈때, 저도 공부방에서 꿈 키워요”

안녕하세요? 저는 열두 살 소망(여·가명)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구요, 레인보우 지역아동센터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냅니다.

제가 자란 곳은 경북의 한 어촌입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10만원짜리 월세방에 살았어요. 아빠는 엄마보다 열 살 많은데 구룡포에서 어부로 일하셨어요. 아빠는 매번 술을 먹고 들어오셔서 엄마를 마구 때리곤 하셨어요. 아빠가 콘크리트벽에 엄마 머리를 처박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것을 수도 없이 봤어요. 그래서 그런지 언니랑 남동생, 저는 무척 조용합니다. 엄마는 늘 우울해하셨어요. 엄마는 밥보단 어묵 햄버거 빵 우유를 사다주시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우리 남매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TV 시청과 인터넷뿐이었어요.

3년 전 경기도 성남시 고등동으로 이사왔어요. 방 2개짜리 반지하방이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인 언니는 악몽과 같은 시골 재래식 화장실을 탈출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대요. 초등학교 2학년인 동생은 세 살 때 물에 빠져 오른쪽 뇌를 크게 다쳤어요. 사고뭉치인 동생은 정신장애 2급으로 가끔 발작 증상이 나타나 정신을 차릴 때까지 다리를 주무르거나 흔들고 물을 먹여야 해요. 아빠는 당뇨병 때문에 무리한 일을 못해 늘 집에 계세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엄마는 해준 것이 하나도 없다며 우리 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어요.

지역아동센터에 오게 된 것은 경찰서 덕분입니다. 2007년 5월 아빠의 폭력을 참다못해 이혼을 결심한 엄마가 집을 뛰쳐나갔고 경찰서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부탁했답니다. 엄마는 이곳에 자원봉사자로 잠시 있었는데, 아 글쎄 하나님의 큰 사랑을 느꼈대요. 그래서 저도 덩달아 2년 전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그렇게 폭력적이던 아빠가 목사님과 상담을 하고 교회생활을 하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거예요. 아빠는 아예 집을 아동센터 근처로 옮겼어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의 집에 살지만 요즘 엄마 아빠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세요. 지금은 아빠가 덜 무서워요. 아휴, 눈 내리던 날 아빠를 피해 전봇대 밑에 숨어 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엄마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식당에서 일하세요. 집에 가면 엄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무세요. 얘기 들어 보니깐 다른 친구 엄마들도 그렇게 일한대요. 돈이 없기 때문에 학원에 갈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제 한달 용돈은 5000원이에요.

저의 일과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아빠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시작됩니다. 학교에 가 아침 자습을 하고 공부를 하다가 점심식사 후 오후 2시50분에 마칩니다. 친구들은 대부분 학원에 가는데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우리 반에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친구가 2명 더 있어요.

저는 이곳에서 선생님과 함께 문제집을 풀고 외발자전거랑 바이올린도 배웁니다. 바이올린은 목사님이 사주셨어요. 저녁은 동생이랑 여기서 먹습니다. 김치와 미역국이 제일 맛있어요. 주로 자습을 많이 하는데 그날 배운 공부를 그 자리에서 복습합니다. 제가 반에서 1등을 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예요. 그 전엔 10등 정도 했는데 매일 꾸준히 공부하다 보니 성적이 오르더라구요. 호기심을 갖고 오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저는 여기 와서 꿈이 생겼어요. 만물박사가 되는 거죠. 그래서 친할머니 같은 목사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을 많이 알려주고 싶어요. 목사님은 저에게 늘 "할 수 있다, 해보자"고 말씀하세요. 예전엔 지친 모습에 쌀쌀맞았던 엄마도 요즘은 제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세요. 여러분도 우리 목사님처럼 제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실 거죠?

성남=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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