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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정원교] 억지로 책읽기


1970년대 초 '자유교양경시대회'란 게 있었다. 당시 문교부가 만들어낸 고전읽기대회였다. 과열 입시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에게 동서양 고전을 접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각 학교별로 '책읽기 선수'를 뽑아 집중적으로 독서를 시킨 다음, 책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시험을 보는 대회가 되고 말았다. 지금 같으면 그러한 방식이 바람직하냐는 논란이 일 법도 하다.

'해동소학' '동방교양문선' '해동명장전' '삼국유사' '구운몽' '촛불의 과학' '파브르곤충기' '그리스 로마 신화'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 학년별 수준에 맞춰 '자유교양문고'로 각급 학교에 무상으로 지급된 책들이다. 표지에 와당(瓦當)의 부드러운 미소가 새겨진 도서들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학생들은 그때 담당 교사의 지도 아래 책을 읽어내야 했다. 약간의 강제성 아래 시작된 독서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몰입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 아닌가. 대회는 단계별로 치러졌다. 시·군과 도대회를 통과하면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상이라도 타면 학교의 명예였다. 이론도 있겠지만 자유교양경시대회가 없었다면 그 시절 학생들이 동서양 고전을 곁에 두기라도 했을까.

'원북 원부산'. 부산시 교육청이 해마다 부산을 대표할 책 한 권을 시민투표를 통해 뽑는 독서생활화 캠페인이다. '원북'이 선정되면 한 해 동안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어 그 책이 널리 읽히도록 한다. 올해는 '원북' 후보 도서로 '개밥바라기별'(황석영), '나무'(이순원), '부산을 쓴다'(정태규),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등 10권이 올라있다.

예나 지금이나 책 읽는 습관이 그 중요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마침내 대학도 책 읽기를 의무화했다. 경희대 한의대는 예과 과정 2년 동안 교수들이 추천한 고전 100권 중 20권 이상 필수적으로 읽게 했다. 진정한 의료인으로 성장하려면 교양도서를 읽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유치한 듯하지만 이처럼 억지로라도 독서를 시키는 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요즘 학생들의 독서량은 과거보다 확실히 줄었다. 디지털 문화 탓이다. 중·고교들도 경희대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하도록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정원교 논설위원 wkc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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