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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윤재석] 버스 안내양


조선작 원작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영자의 전성시대' 여주인공 영자는 무작정 상경한 처녀. 가정부로 일하던 집 주인에게 성폭행당하고 쫓겨나 공장직공이 되지만, 박봉을 못 이겨 호스티스로 나선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이 또한 그만두고 시내버스 안내양(차장)이 된다. 만원버스에서 떨어져 한쪽 팔을 잃은 영자는 막다른 골목인 사창가로 빠지는데….

'안내양'보다 '차장'이라는 호칭이 더 친숙했던 이 직종은 서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존재였다. 드럼통을 두드려 만든 섀시(차체)를 미군 트럭용 GM 엔진 위에 얹어 운행했던 전후 시절 앞문엔 조수가, 뒷문엔 차장이 있었다.

조수는 말 그대로 운전기사 보조였다. 버스 시동이 갑자기 꺼지면 잽싸게 엔징 스따찡(엔진 스타터의 일본식 발음)으로 시동을 걸기도 하고, 청소도 하는 등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그러다가 어깨 너머 배운 실력으로 운전기사 몰래 차를 몰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고….

차장은 주로 뒷문에서 승하차 관리와 함께 요금을 받았는데, 1961년 차장제 도입으로 앞문 조수도 여차장으로 바뀐다. 여기서 안내양의 수난이 봇물을 이룬다. 삥땅(버스 요금을 중간에 빼돌리는 행위)을 의심받아 알몸 수색을 당하는가 하면, 기사나 버스회사 직원들의 성노리개로 유린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콩나물시루 버스에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 개문발차(開門發車)하다가 떨어져 '영자처럼' 불구가 되거나 숨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개발연대의 암울했던 자화상이었던 안내양은 버스 문이 하나가 되면서 인원도 줄었고, 82년 시민자율버스가 도입되자 아예 안내양 없는 버스가 서서히 늘더니, 토큰과 자동문 도입이 끝난 89년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 버스 안내양이 21세기 대낮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다. 서울시가 경기침체 등으로 힘겨운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그제 시내버스 일부 구간에서 실시한 '해피 버스 데이(Happy Bus Day)' 행사의 일환으로 버스안내양을 배치, 운행한 것이다.

경쾌하게 "오라잇∼"을 외치며 손바닥으로 버스 옆구리를 두드리는 안내양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단상. 지금보다 훨씬 팍팍하고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그 시절엔 그래도 꿈이 있어 행복했었지.

윤재석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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