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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문일] 국회의원 모독


"또 한놈이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치자(治者) 즉 도자(盜者)요, 공약(公約) 즉 공약(空約)이니 우매(愚昧)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골프좀 쳐야겄다"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 중 국회의원 등장 대목이다. 김 시인은 1970년 사상계(思想界)에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 풍자한 담시(譚詩)를 발표했다. 곧 구속된 김씨는 그 후 박정희 정권 내내 골칫거리였다. 그로부터 근 40년이 지나 다시 국회의원을 심하게 욕질한 용자(勇者)가 나왔으니 손꼽히는 사이버 논객 진중권씨가 그다.

진씨는 최근 화제인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지난 17일 진보신당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그 동네를 잘 아는 사람들한테 사석에서 들은 얘기"라며 "접대 명단에 국회의원놈들도 들어가 있다는 얘기도 있고…"라고 썼다. 그런데 '카더라'는 카더라였을 뿐이고, 진씨는 파문이 커지자 이튿날 "과거에 그런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잘못 들은 것 같고, 확신이 없다"고 번복했다.

도청도설(道聽塗說)이라는 말이 있다. 길에서 들은 일을 길에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무슨 말을 듣고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시 옮기는 경박한 태도를 나무랄 때 쓰인다. 진씨가 말이 많다보니 제 말에 걸려 넘어진 꼴이 됐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말로 일어선 자 말로 망한다.

잦은 논쟁 속에서 진씨의 논리는 점차 독설로 변했고, 독설은 이제 막말로 퇴화하고 있다. 자칭 또랑광대요, 거지시인인 김지하는 독재의 철권을 맞으면서도 풍자(諷刺)의 본령을 벗어나지 않았다.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라는 김 시인의 산문은 제목만으로 중앙대 겸임교수라는 진씨의 지성을 압도한다.

그런데 진씨에게 '놈' 소리를 들은 국회의원들은 어떤가. '맹자'에 욕먹는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모욕한 후에야 남이 모욕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놈' 소리에 얼굴 붉힐 자격이 있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될까.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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