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강교자] 희망만은 잃지 말자 기사의 사진

힘겨운 등록금을 손수 마련하려고 휴학과 복학을 되풀이해 가면서도 끈질기게 대학생활을 이어갔던 한 젊은이가 취업을 위한 힘씀에 지쳐 차가운 한강 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린 안타까운 사건은 실업 100만인 시대, 특히 심각한 청년실업문제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큰 충격과 함께 깊은 생각의 기회를 주었다. 절망과의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 아들 딸들의 고통에 부모들의 몸과 마음이 녹아든다.

힘을 주는 ‘헌병초소’의 기억

이 기사를 읽으면서 어렸을 때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빨리 의사 선생님을 모셔오너라’라는 아버지의 소리에 놀라 깨었다. 심장이 약하셨던 어머니 곁에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계시는 아버지 말씀에 급히 집을 나섰지만 10살 어린아이 혼자 가기엔 너무 어둡고 무서운 밤길이었다. 가로등도 없던 그 시절에 통금이 해제되기도 전의 칠흑같은 밤길은 두려움이었다. 길을 따라 흐르는 개천 물소리와 나를 뒤따라오는 것 같은 발자국 소리에 진땀이 흐르고 다리는 땅에 박힌 듯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집으로 되돌아왔지만 애타게 의사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눈과 마주친 나는 다시 집을 나왔다.

두려움에 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내 눈에 저 멀리 헌병초소에서 비쳐오는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갑자기 희망이 생기며 힘이 솟았다. ‘저곳까지만 가면 헌병아저씨가 도와 줄거야.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의사선생님을 깨워주겠지. 저기까지, 저 불빛만 보고 달리자’하는 희망은 아픔도 무서움도 이겨내는 힘을 주었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신발도 벗어 들고 맨발로 뛰었지만 아픈 것도 몰랐다. 맨발로 달려와 울음을 터트린 어린 아이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지 않았고, 난 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개선장군처럼 집에 돌아갔다.

그 이후 삶을 살아오면서 어두운 밤 같은 상황을 맞을 때마다 나는 그날 밤, 그 헌병초소에 걸려있었던 희미한 불빛을 기억했다. 그리고 목표할 수 있는 희미한 불빛을 찾기만 하면 어김없이 거기까지 달려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희망의 빛은 제공해 주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파산 후 두 아이들의 등록금을 마련하려 원양어선을 타고 고기를 잡으며, ‘한 달 수입 250만원에 170만원이 과외비예요’라고 울부짖으면서도 엄마가 청소하기 위해 식당으로 달려가는 것은 자녀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한 철학자 말처럼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힘은 돈이 아니라 희망에서 오기 때문이다.

일자리 부족보다 더욱 심각한 비극과 불행은 우리 젊은이들의 희망이 줄어들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을 주지 못하는 일시적인 땜질식의 정책이나 방편은 오히려 저들을 더 깊은 절망으로 끌어내리게 된다.

‘돈을 잃은 것은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명예를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한파 속에서도 봄을 기다릴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젊은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그는 나에게 희망과 용기와 사랑을 주었습니다’는 헬렌 켈러의 고백은 깊은 가르침을 준다. 칠흑 같은 밤길을 걷는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에 떨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설리번 같은 부모, 스승, 선배들의 역할이 간절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절망한 청년들 감싸안아야

젊은 세대를 위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의 조정과 수립을 통하여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청년실업 문제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당하고 있는 젊은세대는 희망만 잃지 않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우리사회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생활비만 줄었는데, 이번엔 희망까지 줄었어요’라는 한 주부의 탄식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강교자 YWCA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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