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칼럼] WBC 드라마를 보면서 기사의 사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 경기장 마운드에 꽂힌 태극기의 펄럭임이 정겨웠다.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예선승자전에서 일본에 당했던 2대 14, 7회 콜드게임의 치욕을 1대 0으로 꺾은 데 이어, 4강전에서도 4대 1로 제압한 쾌거의 산뜻함 때문이었나.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음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 백성들에게 힘내라는 손짓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ESPN은 “대한민국이 올해 WBC에서 일본을 두 차례나 꺾은 것은 아시아 최강의 교체를 알려주는 징후”라고 전했고, 일본 언론은 “사무라이 칼이 꺾였다”고 통탄했다.

그제 있었던 한-일전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감격스럽고, 또 대견하다. 한일 간의 야구 여건을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일본의 고교 야구팀은 4200개교에서 15만명의 꿈나무가 대기 중인 데 비해, 우리는 53개교에 고작 1500여명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계량적 전력 차이에 더해 일본에 6곳이나 있는 돔구장도 우리에겐 없다. 이렇듯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모두 불리한 조건에서 거둔 승리라 더욱 값지다.

야구분석가들은 이번 쾌거를 선수와 감독이 혼연일체되어 일군 승리로 평한다. 우선 20대 초·중반 토종 주니어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진용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선수를 중심으로 전열이 짜여진 일본에 맞섰다. 노장 선수들의 대거 퇴진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지만, 팀 워크를 앞세운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신예들의 투지가 화려한 개인기와 노련미의 일본팀을 제압한 것이다.

“열세 딛고 승리 펼친 대한민국팀에 박수를 보내며 오늘 경기도 최선 다하길”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혈기방장한 미완의 선수들을 능란하게 다룬 감독의 용병술이다. 자율야구의 상징 인물이자 구수한 이웃 아저씨 이미지의 김인식 감독은, 이번 대회에선 선수들에 대한 전폭적 신뢰의 토대 위에 주도면밀한 선수기용과 다양한 작전으로 일본 타선을 유린했다.

특히 4강 진출을 확정지은 그제 경기에선 선두타자를 고수했던 이종욱 대신 이용규를 전격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아울러 ‘일본킬러’ 김광현이 의외로 무너진 상황에서 ‘의사(義士)’ 봉중근을 선발 투입,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치명타를 가했다. 또 구위가 돋보이는 윤석민과 정현욱은 물론, 김광현까지 중간계투로 재활용하는 완벽한 합을 완성해 마운드 운용에서도 압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1차 WBC대회 때도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 감독은 여전히 선수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면서도 승부의 고비에선 냉정한 판단력으로 선수 교체와 작전 수정을 병행했다. 그게 바로 콜드게임패의 충격을 딛고 두 차례나 일본을 꺾으며 4강 진입을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는 것.

역사상 ‘특수관계’인 한일 간의 스포츠경기는 언제나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다. 동시에 필요 이상의 신경전,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집착증으로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기대 이하의 성과에 따른 낙담과 절망 또한 컸다. 양국 국민들의 과도한 성원과 기대를 짊어진 양국 팀의 부담 도 이만저만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과 일본은 또 한 차례 숙명의 대결을 펼칠 것이다. 어제 2라운드 1조 패자부활전에서 일본이 쿠바를 5대 0으로 완파, 기사회생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팀이 승리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하여 가뜩이나 팍팍한 우리네 살림살이에 신선한 청량제가 되기 바란다. 그렇다고 대한민국팀에게 너무 부담을 주지는 말자.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니까.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