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상권 (6) 대통령이 90억 지원 지시… 사료공장 세워

[역경의 열매] 정상권 (6) 대통령이 90억 지원 지시… 사료공장 세워 기사의 사진

남원 정착촌에서 어느덧 4∼5년이 흘렀고 드디어 나의 반쪽을 만나게 됐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고, 그녀는 이제 막 20대 초반이 된 꽃다운 나이였다. 유난히 희고 고운 피부와 맑은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는 꽃처럼 아름답고 천사처럼 착한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 누구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하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 만큼 속이 깊었다.

처음 가정을 이루었을 때, 내 수입은 변변치 못했다. 그저 병아리를 키우는 일이 생계의 전부였다. 나와 아내는 신혼방 아랫목에서 병아리를 키웠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달걀을 팔았는데 영 신통치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믿고 따라 준 아내가 참 고맙다. 아내가 없었다면 나는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차츰 나를 인정해주면서 많은 일을 맡겼다. 나중에는 농촌지도자 역할을 했다. 1972년 당시 국가적으로 농촌 주택 개량 사업을 했는데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다니면서 아주 열심히 일했고 그 성과가 크게 나타났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면서 손수레 길조차 없었던 마을이 차츰 살기 좋은 마을로 변화되었고 나중에는 주변에서 가장 잘사는 마을로 인정받을 만큼 변모했다. 이런 마을 소식을 들은 전라도 지사가 부인과 함께 마을을 찾아왔다. 나는 도지사 앞에서 마을의 사업 보고를 했는데 도지사 내외는 물론 모두가 함께 울었다.

이런 영향인지 각 방송사에서 우리 마을을 취재했고 그 결과 새마을 자립 마을로 승격되었다. 그후 대구 체육관에서 새마을지도자대회가 열렸는데, 전국에서 온 각 마을 대표들이 대통령 앞에서 성공 사례를 발표했다. 나는 남들처럼 웅변식으로 거창하게 하지 않고 진솔하게 대화하듯 우리 마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반응이 가장 좋았다.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언제나 도우셨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막힘없이 잘 진행되었다고 여겨진다. 그 결과 나는 새마을훈장도 받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새마을 강사로 불려다니게 되었다.

마을 대표로 일하면서 가장 마음이 뿌듯했던 것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료공장 지원금을 받았을 때다. 그 당시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90억원이라는 엄청나게 큰돈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하나님이 함께해주셨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 사연을 소개하면 이렇다. 대통령을 접견할 기회가 있었는데 함께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발언과 질문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내게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찬스를 보아 대통령께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소견을 밝혔다. 그리고 우리 마을과 사업에 관한 제의를 일목요연하게 밝혔다. 그 결과 대통령이 우리 마을에 '사료공장'이라는 큰 사업을 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우리 정착 농원에서 생산되는 달걀이 전국 생산량의 25%를 차지할 때도 있었다. 그때 사료가 무척 비쌌는데 우리 사료공장은 손익분기점을 넘길 만큼 잘 운영되었다. 당시 우리가 함께 운영했던 한성사료공장의 한 달 생산량은 1만t이나 되었다. 나중 30만t을 넘겼을 때는 고난 극복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로 이루어진 정착마을이 처음에는 가난하고 미약하기만 했으나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 건강하고 살기좋은 마을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으로 하나가 되지 못했다면, 이런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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