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임순만] 작은 책상 기사의 사진

서울 우이동 산자락에 있는 '명상의 집'에 갔다. 도시와는 멀지 않지만 '묵언'이라고 쓴 편액이 곳곳에 걸려 있고 시골처녀네 집처럼 말쑥한 분위기 때문에 도시로부터 멀리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한신대 권명수 교수가 인도하는 관상기도회에 스물댓명이 참석했다. 관상기도는 내 소원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고요히 바라보면서 그분의 말씀을 집중해 듣는 기도라고 한다.

마음 속에 무수히 떠오르는 잡념을 거두고 '어떤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소리없는 전투를 치러야 한다. 성공과 물질에 치우친 시대에 진정한 변화의 힘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기도라는 평을 얻고 있다.

묵언.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말이 터져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머리는 그 힘에 저항하느라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 사람에게 작은 방 하나씩을 준다. 두어 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공간과 양쪽 벽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작은 나무책상 두 개가 전부다. 하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 커튼을 연다.

창 밖 정면에 큰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잎새를 모조리 버린 나무는 가지 한 줄기 한 줄기를 모두 새카만 하늘로 뻗쳐올리고, 침묵으로 겨울 새벽을 버티고 있다. 화가 변관식(1899∼1976)의 그림 '설촌기려(雪村騎驪)'나 '농가의 가을밤'에 우뚝 서 있는 한두 그루의 나무를 연상케 한다. 일본화풍이 유행하던 화단을 멀리하고 팔도강산을 떠돌던 변관식은 50대 중반에 서울 돈암동 아리랑고개 근처에 자리를 잡고 '돈암산방'이라는 당호를 내걸었다. 부유(浮遊)하던 삶에서 자리를 잡자 그는 속에 있던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치솟는 수직구도에는 속(俗)을 넘어서는 힘이 있었다. 강렬한 화폭의 서사(敍事)는 말을 아끼고 살아온 한 인간의 절규처럼 보였다.

방 안엔 작은 나무 책상과 걸상. 책 한 권과 노트 하나를 펼치면 더 이상 올려놓은 곳이 없는 넓이다. 누군가 이렇게 작은 책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연전에 톨스토이 기념전이 서울에서 열렸을 때 톨스토이가 생전에 사용했다는 책상과 침대의 크기를 보고 느낀 것이 있다. '세기의 문호'로 추앙받는 톨스토이지만 그가 '부활'을 집필했던 책상의 크기는 불과 몇 뼘밖에 되지 않았다. 영혼의 깊이는 사용하는 침대나 책상의 넓이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생각했다.

경기도 광주시 산성리에 남아 있는 한경직(1902∼2000) 목사의 거처도 그런 감동을 준다. 얼마 전 국민일보에 보도된 한 목사의 우거는 짝이 맞지 않는 천소파 몇 개, 낡은 문갑, 모서리가 닳은 장식장, 좁고 낮은 침대, 이불장을 겸한 한 칸짜리 옷장…그렇게 소박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방에서 한 목사는 1992년 템플턴상을 수상하러 미국으로 가게 됐을 때 입고 갈 만한 웃도리가 없어서 와이셔츠만 입고 우물쭈물 서 있었다고 한다. 웃도리는 또 누군가에게 벗어준 것 같았다고 했다.

한 목사는 생전에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혼자 눈물을 흘릴지언정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참는 것에 대해 한 목사는 "상대방에게 줄 고통을 내가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전언이 있다.

묵언. 말을 하지 않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혹은 작은 책상에 앉아 말씀을 읽거나 생각하는 것. 창 밖에서는 오랜 수령의 참나무가 침묵에 동행해 주는 것. 일방적으로 내 고통을 토로하면서 소망을 간구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작은 책상 같은 것들이 주는 소박한 저력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임순만 종교국장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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