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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進步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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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의 질서와 체제에 내재해 있는 모순 등을 근본적이고 급진적으로 개혁해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진보가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를 공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도덕적 우월성이다. 보수의 썩은 부분을 찾아내 이를 도려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 개혁의 첫 단계이며 일반 대중에게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가 도덕적 우월성을 잃는다면 그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진보의 도덕적 우월성은 세속적 가치의 희생과 기득권의 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일반인들이 추구하는 돈, 권력, 명예와 같은 세속적 가치와 향락에 탐닉할 경우 진보가 개혁 대상으로 내세우는 부정부패와 같은 보수의 내재적 모순에 스스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분단국가여서 이념적으로 보수 성향이 유난히 강한 우리나라에서 진보 성향의 정당이 두 차례나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국민이 그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인정한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민주화 투쟁 등 스스로의 공(功)과 함께 진보 성향의 단체들이 우군이 됐고, 그 단체들의 반부패 투쟁과 같은 캠페인들(보수 쪽에서는 그걸 포퓰리즘이라 했지만)이 국민의 호응을 얻은 덕도 컸다.

그러했던 진보 성향의 단체들이 요즘 지도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시련을 겪고 있다.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대기업 노조 간부들의 도박, 공금횡령, 수뢰 사건 등이 꼬리를 문다. 또 막강한 환경단체 대표의 알선수재 의혹도 진보 단체들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비리 등은 진보 단체들의 내부에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립 의의에 대한 회의를 야기하고 있다. 진보 자체가 사망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외침이 나오는가 하면, 민주노총의 경우 많은 대기업 노조들의 탈퇴와 제3의 노총 결성 움직임마저 있다.

그들의 도덕적 해이는 해당 단체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진보 단체들에 대해서까지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킨다. 진보 단체들에는 도덕성과 모순을 개혁하려는 노력 등을 통해 분명히 사회의 방부제 역할을 하는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다. 한데 이러한 비리와 의혹들은 그 기능을 소멸시키고 만다.

일부 진보 단체 간부들은 이 정도의 비리 의혹이야 보수 단체들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데 진보 단체들의 그것들만 침소봉대하는 건 보수 세력의 음모라며 억울해 한다. 그러나 설령 똑같은 잘못이라 해도 진보 쪽이 더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건 앞에서 말했듯 그들이 도덕적 우월성을 존립 기반으로 하고 그들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같은 잘못을 해도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는 X이…"라며 예수 믿는 사람을 더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기존의 건강한 가치와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가 있어야 하듯 구조적 모순과 병폐를 개혁하려는 진보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라면 진보는 설 자리가 좁아지고 결국엔 존립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진보 단체들이 도덕 재무장에 사활을 걸어야 할 시점이다.

민주당도 보수 단체들의 티끌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진보 단체들의 들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게 옳은지 자문해봐야 한다. 우군의 잘못에 함구하면 상대편의 잘못을 외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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