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혜림] 껍데기는 가라,컬렉션도… 기사의 사진

모처럼의 호사였다. 지난 주말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펼쳐진 스파서울컬렉션에 갔다. 이날만은 이상기온이 고마웠다. 국립극장 가는 오르막길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과의 반가운 눈인사, 그리고 쇼는 시작됐다. 늘씬한 모델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은 저마다 또렷한 개성과 멋스러움을 자랑했다. 그 옷들을 보러온 연예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괜찮았다. 그렇게 흥흥거리다 난데없는 깨달음. 에잇, 그런데 남북통일은 정말 힘들겠구나.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19∼21일 열린 38회 스파서울컬렉션에 이어 26일부터 4월2일까지 2009 춘계 서울 패션위크가 펼쳐진다. 이 두 행사는 애증 깊은 연인들처럼 합쳐졌다 갈라서길 되풀이하고 있다.

한 해 두번 다음 시즌 유행할 옷을 미리 보여주는 컬렉션의 우리나라 역사는 제법 깊다.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가 1990년 11월 컬렉션을 시작했다. 이후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 뉴웨이브인 서울(NWS) 등도 컬렉션을 했다. 디자이너들이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컬렉션 목적 중 하나인 수주는 거의 이뤄지지 않아 '저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마침내 서울시가 나섰다. 2000년 10월 시는 서울을 아시아 패션의 중심 도시로, 나아가 세계적인 패션 도시로 육성해 한국 패션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며 서울패션위크를 시작했다.

쌈짓돈 털어 컬렉션을 하던 디자이너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데, 어쩐 일인지 처음부터 삐걱거려 톱 디자이너 그룹이 참가하지 않았다. 2003년 3월에야 모든 디자이너 그룹이 참여한 통합 컬렉션이 됐지만 그해 가을 깨졌고, 그 이후 통합과 분리를 거듭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세계 패션 무대에 제대로 데뷔도 못했다. 해외 컬렉션은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올해도 뉴욕(2월 13∼20일) 런던(2월 20∼24일) 밀라노(2월 25일∼3월 4일), 파리(3월 4∼12일) 컬렉션을 돌면서 바이어들은 다음 시즌 상품을 주문했다.

힘을 합쳐도 될까말까 한 상황에 내홍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 패션계. 서울시 관계자들은 일부 디자이너들이 고집을 부려 번번이 일이 틀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물론 단체 이기주의로 전체 모양을 흐트러뜨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난 가을 스파는 회원들의 쇼를 한데 모은 '스파데이'를 원했고, 서울시는 남녀 복종별 쇼를 고집해 결국 갈라섰다. 지금은 외양 꾸미기보다는 내용을 알차게 다듬어야 할 때다. 디자이너들이 설사 트집을 위한 트집을 잡아도 끌어안고 가야 한다. 하물며 겉모양새를 위해 통합을 포기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올해 서울패션위크의 서울시 예산은 50억원이다. 나라 살림이 어려운 때 적지 않은 시민의 혈세를 쏟은 서울패션위크는 외화내빈이 될 가능성이 크다. 23개국 110여명의 해외 바이어와 기자들을 초청하는 등 패션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췄다고는 하나 그동안 이 행사 대표 주자로 꼽혀온 디자이너가 빠졌고, 스파는 물론 NWS도 따로 컬렉션을 한다. 일각에선 신인 디자이너 발표장이라는 비아냥까지 있다. 껍데기 지키느라 알맹이가 부실해지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컬렉션 통합도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사상으로 갈라진 지 60여년인 남북이 하나로 되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는가. 통일이 어렵겠다는 생각을 패션쇼장에서 하게 된 이유다.

김혜림 생활과학부장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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