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상권 (7) 평화봉사단 美 아가씨 “한국 청년과 결혼”

[역경의 열매] 정상권 (7) 평화봉사단 美 아가씨 “한국 청년과 결혼” 기사의 사진

남원 정착촌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니 마을 대표가 되어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했다. 우리 마을에 평화봉사단원으로 미국인 '미스 강'이라는 자매가 배정됐다. 당시 한센병력자 정착 마을이 전국에 100여개 있었는데, 평화봉사단에서 대표적 마을에 한 사람씩을 파견해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한국에 온 평화봉사단 15명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이 아가씨는 한국 이름이 '강주혜'로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을 졸업했으며 성격도 싹싹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고 몸이 아픈 사람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도 했다.

"저 아가씨는 미국의 좋은 가정에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잘 살 수 있는데 왜 한국의 이 시골마을에까지 들어와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나는 그녀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깊은 신앙심이 이런 헌신적인 봉사를 하게 된 배경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를 희생하고 남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신앙도 새롭게 정립하고 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자매를 '누나'라고 부르던 최영만과 유독 친하게 지내더니 어느 날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자매는 나를 이모부라고 부를 정도로 잘 지냈는데 자신들이 결혼을 해야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최군은 당시 그 자매보다 나이가 많이 어려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었다. 일시적인 감정으로 인해 최군이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미스 강은 "오히려 최군이 자신을 버리면 버렸지, 자기는 최군을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진지한 태도에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스 강 부모님은 한국에 오시기 힘들었고, 주례를 해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내가 그들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이 사실을 알고 TV방송국에서 취재를 했는데 예고편이 너무 자극적으로 나가는 바람에 전국 정착촌에서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이 결혼을 허락한 내게도 문제를 제기해 왔다. 당시만 해도 나이차를 이해할 수 없는 보수사회였기에 많은 손가락질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격려했고 오히려 주변의 항의를 막아주었다.

두 사람은 방송 출연료를 받아 계획대로 미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무척 고맙고 존경스럽다. 여러 면에서 많은 것들을 갖춘 자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마을까지 와서 여러 사람들을 섬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자매의 모습을 무척 기뻐하셨을 것이다. 자신의 학벌과 미모, 많은 재주가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겸손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은 그 자매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아닐까 싶다.

종종 그 자매의 소식을 듣는다. 여전히 두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최군은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했고, 두 사람 모두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바로 우리 정착 마을을 통해 맺어진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이야기는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기억이자 아름다운 추억이다.

나는 이곳 정착촌에서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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