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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 비선진국을 가르는 잣대는 여럿 있겠지만 그 하나로 보행권 확보 수준을 꼽고 싶다. 선진국일수록 보행권이 잘 확보돼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보행권은 한마디로 '보행자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1997년 서울시의회가 제정한 '보행권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기본조례'에서 규정한 정의다. 이처럼 보행권의 개념은 지극히 소박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행권이 받는 대접은 형편없다. 서울 등 대도시의 가로를 걸어보라. 쾌적한 보행은 아직 꿈일 뿐이다. 보도 위에 줄줄이 놓인 불법 적치물, 횡단보도를 마구 침범하는 자동차, 주차장 진입로를 위해 끊긴 보도들, 보행로를 떡하니 주차 공간으로 쓰는 건물주들, 보행자 사이를 위험스레 달리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들, 마스크 없이는 못 걸어다닐 대기오염….

보행의 제약요인은 이처럼 많다. 도심도 문제지만 주거지역도 보통이 아니다. 도시의 주거지역엔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도가 있어도 너무 좁아 보행자와 차량은 아슬아슬 스쳐가야 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03∼2007년 전국 7대도시의 연평균 교통사고 사망자 1553명 중 49.6%인 770명이 보행중에 숨졌다. 특히 사망자 중 43.8%가 차도와 보도의 구분이 없는 폭 6m이하 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생활도로가 가장 위험한 도로가 돼버린 것. 그래서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율은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늘 1위다.

걷기는 직립동물인 인간의 가장 기본적 이동수단이다. 이 걷기가 홀대받는 사회는 선진사회가 아니다. 유럽과 미주의 도시들에 가 보면 걷고 싶은 거리가 수두룩하다. 그곳 주민들이 걷기의 즐거움을 일상으로 만끽하는 것은 철저한 보행자 위주 행정 덕택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차량중심 행정에 매몰돼 왔다. 그 결과 후진적이다 못해 야만적인 교통문화가 형성됐다. 이제는 인간중심 교통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 자전거도로 확대 정책은 쏟아지지만 보행환경 개선 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보행자가 최우선으로 배려받는 사회, 걷고 싶은 거리가 즐비한 도시는 우리에게 정녕 불가능한 꿈인가.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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