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희망의 길,한국교회가 만든다] 인천 영화초등학교 폐교 위기서 구한 오인숙 교장

[경제 희망의 길,한국교회가 만든다] 인천 영화초등학교 폐교 위기서 구한 오인숙 교장 기사의 사진

믿음의 교육 "서울에서 소문 듣고 찾아와요"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린 교장 선생님이 있다.

영화초등학교의 오인숙(57·사진) 교장이 주인공. 영화초등학교는 1892년 인천 내리감리교회 2대 목사인 미 선교사 존스의 부인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다. 국내에 처음 보이스카우트와 고적대를 도입해 명성을 날렸던 이 학교는 1990년대 이후부터 시대의 변화를 수용 못해 폐교 위기에 몰렸다.

2007년 9월 오씨가 교장으로 부임했을 때 학생수는 76명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200명 이하 사학을 영세사학으로 분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학생수도 적은 데다 교사의 체벌에 따른 재단과 학부모 간 갈등으로 학교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12학급이 6학급으로, 400여명이 70여명으로 줄었더군요. 이렇다 할 학습 프로그램도 없고 아이들 교복도 수십년 전 교복이었어요. 벽에는 '횟가루'만 잔뜩 칠해져 있더군요."

안정적인 공립초등학교 교장직을 마다하고 문 닫기 일보 직전의 학교 교장직을 맡은 오씨.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마지막 카드'로 부르셨기에 사명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일반 학교에서 20여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가 그토록 바라고 기도했던 일이 기독교학교 설립 아니었던가. 결국 비기독교 학부모들과의 갈등으로 사표를 내야 했고, 후유증으로 대장암이라는 병마와 싸워야 했던 그에게 주어진 '응답'이 아니었을까. "선교사들이 세운 이 학교를 문닫게 하는 것을 신앙 양심이 허락지 않더라고요."

부임 후 몇 주간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냉수를 찾았다. 후회도 했다. 하지만 순종하기로 결단한 이상 어떻게든 학교를 바꿔놔야 했다.

감사와 종합장학지도를 코 앞에 두고 교사들과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갔다. 회계 자료를 비롯해 뒤죽박죽인 서류들을 정리하고 복도를 활용한 영어마을과 교사와 학부모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엄마의 공책', 적성 심리검사 프로그램 등을 만들면서 교육의 질을 높여 나갔다. 이 기간 오 교장은 신우염에 걸렸고 교사 7명 중 2명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몸 고생을 했다. 장학사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단인 내리감리교회에서도 1억원을 지원해 줬다.

학부모 기도 모임도 활성화됐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어머니 기도모임이 열렸고, 저녁 8시엔 퇴근한 아버지들도 학교로 찾아왔다. 아이들의 인사말은 '안녕하세요'에서 '사랑합니다'로 바뀌었다. 학부모들은 학교 홍보지를 들고 인천 전 지역을 뛰어다녔다. 교사들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퇴근했다.

3월 현재 재학생 수는 206명. 교육청에서는 오씨를 보고 '역전의 용사'라고 부른다. 인천시 취학 아동이 1만명 줄어든 상태에서 나홀로 성장한 사례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인천=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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