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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정상권 (8) “사람답게 살아보자” 전국 돌며 강연

[역경의 열매] 정상권 (8) “사람답게 살아보자” 전국 돌며 강연 기사의 사진

전국에 있는 한센인 정착촌 대표들을 모아 창립한 것이 한성연합회다. 처음엔 한센인연합회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1967년부터 이 모임이 생겼고 75년 사회단체로 첫 등록됐다. 이때부터 시·도지부가 결성됐는데 나는 나이가 어려 열심히 따라다니며 연합회 일을 배웠다. 그러다가 전북지부 사무장이 되어 6년 동안 봉사했다.



그러다 한성연합회는 이름을 바꾸고 한참 뒤인 87년에 가서야 정식으로 창립됐다. 한센인들은 일제 치하 때부터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처음엔 힘이 없었다. 그런데 조직을 갖춘 한성연합회가 활동을 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제법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구호물자를 받는 일부터 새마을사업, 순회 지도 등을 하면서 축산기술도 전해야 하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81년부터는 한성협동회 상무이사로 서울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사회단체로서의 조직을 강화하고 중앙정부의 인정을 받아 예산도 지원받을 수 있었고 여러 사업도 진행할 수 있었다.

나는 각 정착촌의 생활보호대상자 양곡을 지원받는 일과 예산 배정을 위해 뛰었고 정착촌의 무분별한 민원 요청을 중간에서 정리하는 일도 맡아 했다. 당시 정부는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한센병 환자들을 소록도에 강제로 보내는 일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한센인들의 인권이 무시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에 우리 한성연합회가 자율적으로 이 일을 하겠다고 제안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 우리가 이 사업을 맡아 몰려다니는 한센인들에게 잘 이야기하고 권면함에 따라 거리를 배회하며 부랑하던 한센인들이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한센연합회 회장을 모시고 전국 정착촌을 돌며 특별 강연을 시작했다.

"우리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한번 살아봅시다. 우리가 비록 한센병 때문에 가난에 찌들어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살았지만, 열심히 돈 벌고 자립해서 이 불행을 우리로 끝내야 합니다. 그래서 결코 후세들에게는 이 아픔을 넘겨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 부모는 진짜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줍시다."

당시 전국에 있던 101개 정착농원 중에 84곳에 교회가 있었고 몇몇 곳은 성당이 있었다. 나 역시 크리스천으로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기에 기독교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회에 힘을 실어주는 데 앞장섰다.

나는 한성연합회 임원으로 다른 마을도 잘살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내가 사는 남원정착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당시 우리 마을은 인원이 늘어 35가구 125명이 살고 있었다. 마을 주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힘을 합쳐 일하고 돈을 모았기에 조금씩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가고 있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생기니 탄력이 붙으면서 가구별 수입이 점점 늘어났다. 그랬더니 우리들을 멀리한 채 지냈던 가족, 친척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세상 이치였다.

심지어는 우리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외부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 정착촌에 와서 축사 관리 등을 하면서 돈을 벌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외부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고 우리 마을에 점점 동화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센병 마을이라고 상대도 안 하더니 마을이 잘살게 되니 제발로 들어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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