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상권 (9) 美 월드비전,정착촌 아동 400명에 장학금

[역경의 열매] 정상권 (9) 美 월드비전,정착촌 아동 400명에 장학금 기사의 사진

정착촌의 경제적인 문제가 안정되자 새로 대두된 것은 자녀 교육이었다. 우리 마을엔 초등학교 분교밖에 없어 어린이들이 제대로 교육받기엔 열악했다. 학교에는 선생님이 두 분 계셨는데 아이들이 수업받다가 집에 가버려도 누가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이 아이들을 위해 당시 월드비전 정착복지관장이었던 신정하씨가 미국 후원자와 연결시켜 자녀들의 학비를 도와주는 1대 1 결연을 맡아 지원을 해줬다. 미국 월드비전에서 정착농원 어린이 400여명에게 1명당 매달 7달러씩 장학금을 줬다. 당시 이 금액은 학비는 물론 학용품을 사서 공부하기에 알맞은 액수였다. 내가 살던 남원농장에도 40여명의 아이들이 학비 보조를 받았다. 요즘 한국의 NGO 단체들이 해외 어린이들과 후원 결연을 맺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당시 정착농원은 일반 사회사업가들이 원장을 맡았는데 신 관장은 처음부터 이 관습을 깨고 한센병력자 33명을 대표로 뽑아 지원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사람 돈 받기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받을 땐 좋은데 한달 동안 쓴 결산보고서를 만들고 사업계획서도 짜야 하고, 그것도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6하원칙에 맞는 영수증을 반드시 첨부해야 했다. 어린이 사진도 찍어야 미국에 있는 후원자들에게 보낼 수 있었다. 미국 사람들이 아주 치밀하게 일한다는 것을 여기서 배웠다.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신 관장은 이후 교회 장로가 되어 한국구라회에서 함께 활동했으며 현재는 한국국제학생교류회(YFU) 회장으로 계신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하는 사역을 지원해주고 계시다.

그때 월드비전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이 이제는 40대 후반 혹은 50대가 됐다. 지금도 그 뿌리가 이어져 있어 만나면 그때 얘기들을 서로 나누곤 한다. 또한 그 뜻을 기려 장학회를 만들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건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가 한센병을 앓아 하나님을 만났고 구원을 얻었기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지혜와 바른 판단력을 주셔서 계속 많은 일을 이루도록 하셨다.

1978년 내 나이 38세였을 때 남원의 용정교회에서 장로로 추대받았다. 그러나 이 직분을 맡기엔 너무 어려 사양하다가 81년 41세 때 장로가 되었다. 직분으로 일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은 정말이었다. 장로가 되고 보니 모든 면에서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들었다.

남원에서 살았던 18년 중에 81년부터 88년까지 7년반 동안은 내가 서울에서 일하느라 주말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아내는 나의 생활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신경 써 주었다. 아이들은 서울에서 학업을 했다. 첫째는 중3 때 처음 서울로 가게 되었고, 작은 아이들은 각각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때 올라갔다. 세 아이 모두 서울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며 자신들의 꿈을 펼쳐나갔다.

나는 당시 11시간반씩 걸려 남원에서 서울까지 왔다갔다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성실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하는 아이들과 언제나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어 세상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여겼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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