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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오일환] 美 여기자 억류와 北의 선택

[시론―오일환] 美 여기자 억류와 北의 선택 기사의 사진

금년 초부터 북한은 의도적으로 일련의 호전적인 강경 어조를 구사하며 남북경색을 도모하는 한편 '인공위성'(미사일) 발사 준비로 한반도를 극도의 긴장상황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더니 지난 17일에는 느닷없이 북·중 접경지역인 두만강 투먼시 인근에서 탈북자문제를 취재 중이던 시사 케이블방송 커런트TV 소속의 미국 국적 여기자 2명을 붙잡아 억류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나흘 만인 21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현재 해당 기관에서 두 명의 미국 여기자에 대해 조사 중이란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의 23일 정례브리핑에서 보았듯이 북한은 미국 측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처럼 북한이 여기자 억류 사건에 비교적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향후 이 사건을 북·미 직접 대화와 '빅딜'을 위한 전략적 카드로 사용하고자 하는 포석으로 보인다.

오래 끌면 北에도 도움 안돼

그러나 북한당국이 이번 사건 해결을 빌미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그로 인해 사건이 장기화될 경우는 북·미 관계 개선은 고사하고 오히려 북한의 국제적 이미지만 실추하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지난해에야 21년 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상황에서 취재 중인 기자를 납치 억류하고 있다는 것은 폐쇄적인 독재정권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게 될 것이다. 실제로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언론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는 설사 두 여기자가 북한 영토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정당한 취재활동이었기 때문에 즉각 석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관례상 자유로운 언론활동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므로 어떤 경우든 취재 중인 기자를 붙잡아 장기적으로 억류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북한당국은 이번 사건이 취재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니 만큼 구금이나 장기 억류해서는 안 되며, 신속하게 석방하는 것이 옳다. 이들을 조속히 풀어줌으로써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때, 북한은 대외적 이미지 개선과 함께 '정상국가'로 한 발짝 다가가게 될 것이다. 결국 국제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북한의 태도와 선택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북한당국이 미국에 기자 2명을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은 북·미 직접 대화를 기대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그동안 직접대화를 꺼려온 미국을 유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북한의 기대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드 국무부 대변인은 여기자 두 명의 억류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외교 수장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직접 이 문제에 간여하고 있으며,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고위급 대북특사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미, 빈틈없는 공조 필요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직접대화 유도 겨냥해 의도적인 남북경색 유도와 인공위성(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해온 터에 여기자 억류사건으로 어쩌면 '굴러들어온 떡'을 주운 거나 진배없다. 반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출범 이후 새로운 외교안보라인 구축 및 6자회담 주변국과의 공조 등을 이유로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뒤로 미뤄온 것이 사실이지만, 예기치 않은 자국민 억류 사건이 터지면서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북한으로서는 여기자 억류사태로 미국과 고위급 직접 접촉의 호기를 맞았고, 이를 통해 차기 6자회담 전에 미국과 '빅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여기자 석방문제 해결과정에서 북한의 '통미봉남' 정책에 말려들지 말아야 하며, 북·미 관계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의 쌍끌이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한·미공조에 빈틈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일환 한양대 교수·㈔평화한국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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