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정식] 폭력은 이제 그만 기사의 사진

이제 우리도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어느 정도 민주화된 시대에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오히려 그 전보다 더욱 혼란스러우며 특히 무질서와 폭력이 우리들의 정상적인 삶 그 자체를 위협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절박하게 염원해 왔던 삶의 형태이며 국가의 위상이란 말인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민주화란 국민이 주인이라는 의식을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원하는 정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으며 풍요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 특권도 누린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양식을 통해 개성에 맞는 문화를 향유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는 우리가 오늘날 실감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주인답게 인간으로서 품위와 품격을 갖추어 자기의 권리만큼 의무도 이행할 줄 알며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배려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기 자신만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충동과 본능의 노예가 되는 현상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는 교통 신호를 무시하고 먼저 가려는 사람들처럼 각종 폭력 사태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국회에서는 신분을 망각하고 집단 패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시위대에 두들겨 맞고 지갑까지 빼앗긴 경찰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철거민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상자를 낸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는 매우 참담하고 착잡한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사태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무디어진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이것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완전한 존재가 아닌 한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피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칼 포퍼가 지적하듯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개혁을 불가능하게 하는 폭군의 치하에서만"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것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그것은 그 수단 자체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런 시도는 "합리적 계획의 모든 전망을 파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폭력을 자주 사용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유를 상실하게 되는데 "이성의 냉정한 지배가 아니라 강자의 지배를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은 인간관계가 주인과 주인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노예로 전락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을 회복시키려면 헤겔의 표현을 빌려 "자기 의식을 서로 인정하는 체제", 즉 서로를 인정하는 자세로써 이 갈등을 변증법적으로 승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메를로 퐁티는 '대화'에서 바로 그 가능성을 본다. 대화를 통해서만 남과 나는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마치 하나의 직물을 짜내는 것과 같이" 하나로 엮어질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대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전제인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및 자유의 유일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만 서로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갈등을 넘어 협력의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물론 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항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합의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것이 곧 정의이며 진리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끈질기게 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거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폭력을 줄일 수 있으며 더 큰 폭력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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