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 칼럼] 상상력의 힘 얼마나 위대한가 기사의 사진

"오늘날 허구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 작가의 상상력이 있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기이하다'고들 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반어법이다. 소설은 거의 예외 없이 현실보다 더 기이하고 재미있다. 현실이 소설의 근본인 상상력을 뛰어넘기는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을 석권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실존인물이라 해도 그를 바탕으로 한 허구(영화와 원작소설)의 주인공과는 딴판이다.

같은 점이라고는 TV 퀴즈 쇼에서 우승해 거액의 상금을 받았다는 것뿐 그는 빈민가 고아 출신도 아니고, 사랑하는 여인을 찾기 위해 출연한 것도 아니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 경찰관 시험을 공부하던 평범한 청년이다.

그가 퀴즈 쇼를 보고 '나도 한번'이란 생각으로 참가해 우승한 현실은 허구 -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빈민가 소년이 하필이면 자신의 비참한 삶의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뇌리에 각인된 '지식'을 묻는 문제들을 모두 맞춰 우승하고 사랑하는 여인과도 다시 만나게 된다는 - 에 비하면 그야말로 무덤덤하다. 이 무미건조한 현실과 매력적인 허구 사이에 작가의 상상력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재미와 즐거움, 나아가 통찰력과 감동까지 주는, 그래서 그들을 열광케 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지니는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영어로 '작가'를 author라고 한다. 여기서 '권위(authority)'라는 단어가 파생됐다. 과거에는 작가가 권위와 동일시됐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고대사회에서 신성시되던 문자를 '갖고 노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작가의 권위는 씌어진 글 자체의 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제 문자를 떠나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storyteller)'으로서 작가의 권위는 상상력으로부터 나온다고 해서 틀리지 않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나비효과'만 해도 그렇다. 베이징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뉴욕에서는 태풍이 분다는 식으로 설명되는,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초기 조건의 미미한 변화가 크나큰 결과의 차이를 초래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다분히 시적(詩的)인 이 표현은 일반적으로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에 의해 대중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3년에 관련 논문을 처음 발표한 이래 많은 글과 연설을 통해.

그러나 '나비 한 마리가 궁극적으로 엄청난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기술한 것은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였다. 그는 52년작 '천둥소리(A Sound of Thunder)'에서 양자론에 입각한 평행우주 이야기를 다루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관광객이 나비 한 마리를 밟아 죽임으로써 현재가 얼마나 변할 수 있는가를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그려냈다. 말하자면 작가의 상상력이 나비효과의 토대가 된 셈이다.

브래드버리 뿐만이 아니다. 조앤 K 롤링은 어떤가? J R R 톨킨은? 아서 클라크는? 주제 사라마구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스티븐 킹은? 진융(金庸)은? 두 명의 무라카미(하루키와 류)는? 오늘날 전 지구를 덮고 있는 것은 이들의 허구적 상상력이다.

사람은 의식주만으로 살 수 없다. 이야기가 필요하다. 아니 필수적이라 해도 좋다. 실제로 이야기 없는 삶을 상상해 보라.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컴퓨터 게임이든. 거칠게 말하면 이제 허구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이때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게 이야기꾼, 곧 작가의 상상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르에 관계 없이 위대한 상상력을 지닌 위대한 작가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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