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영옥] 아버지를 부탁해 기사의 사진

아버지들은 억울하고 당혹스러웠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평생직장인 줄 알았던 회사에서 졸지에 쫓겨난 가장들. 가정에도 그들의 자리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를, 남편을 가족들은 데면데면 대했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앞만 보고 일했을 뿐인데…. 가족들은 전통적인 엄부보다 놀아주는 아버지, 시간을 같이 해주는 남편을 원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아버지 역할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그 무렵 주변엔 좋은 아버지 모임 등등을 다니는 남자가 부쩍 눈에 띄었다.

10여년이 흘렀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먹고 살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는 2009년 봄. 아버지들은 또 곳곳에서 거리로 내몰린다.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그들을 대하는 가족의 시선은 따뜻할까.

시중 유머가 사회 심리의 척도라면 답은 노(no)다. 주부들 사이에 "댁의 남편은 영식'님'이냐, 일식'씨'냐, 이식이냐, 삼식이'놈'이냐"는 유머가 유행한다. 명퇴당한 후 빈둥거리는 남편이 집에서 하루 한 끼 먹으면 일식(一食)씨, 세 끼를 먹으면 삼식(三食)이놈인 것이다. 가장 미움받는 이가 삼식이놈인 건 뻔한 이치. 최근에는 하루 세 끼에 간식타령까지 하는 '사식이 XX'까지 등장했다. 생존경쟁에 지친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위무의 언어가 아니라 이렇듯 날선 육두문자다. 자식인들 뭐 그리 다르겠는가.

맞다. 그래서인지 모른다. 신경숙씨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문화계에 불어닥친 '엄마 신드롬'의 정체. 그것은 아내에게서 얻지 못한 모성적 위로의 대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98년 자신을 반성했던 아버지들. 지난 10여년간 무얼 했길래 밤참 하나 당당히 차려 달라 못하고 아내로부터 '사식이 XX' 같은 험한 말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됐을까. 주범은 외환위기 이후 가속페달을 밟으며 우리 사회를 덮쳐온 신자유주의다. 무한경쟁에 짓눌린 아버지들은 귀가 시간을 점점 미루었고 주말에는 투잡(two job)에 나서야 했다.

각국이 불황을 넘기 위해 대량해고보다 근로자 근무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잡 셰어링(job sharing)'을 실시하고 있다. 외신은 잡 셰어링을 '불황이 주는 웰빙 기회'라고 소개했다. 월급은 깎였지만 줄어든 근무시간을 이용해 자기 계발을 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 삶의 질은 나아질 수 있어서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이야말로 이런 식의 잡 셰어링이 절실하다. 안타깝게도 '한국형 잡 셰어링'은 본래 취지에서 한참 변형됐다. 공기업 민간기업 할 것 없이 임직원들이 임금 삭감에 나섰지만 그들의 근로시간은 줄지 않았다. 일, 정확히 '일하는 시간'을 나누지 않았으니 생겨나는 일자리가 기껏 인턴 정도일 수밖에. 상시 피로에 절어있는 아버지, 어느덧 그 아버지처럼 샐러리맨 대열에 뛰어든 자식들의 삶은 똑같이 과로에 시달리며 굴러갈 수밖에 없다.

다시 '엄마를 부탁해'로 돌아가자. 소설에서 실종된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엄마가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녀의 희생을 딛고 일어섰던 아버지나 자식들이 가족 중심의 문화로 돌아가려면 세계 최장 노동시간부터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 노사정이 최근 연장근무 삭감, 휴업, 교육 훈련 등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 노동자의 고용을 도모하는 '일본형 잡 셰어링'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일벌레' 일본의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손영옥 인터넷뉴스부장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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