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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이미자의 뒤를 이을 국민여가수를 꼽아본다면 심수봉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심수봉이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피아노를 치며 청상과부 넋두리 조의 콧소리로 '그때 그 사람'을 부르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아마추어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늦깎이 대학생 심수봉은 이미 미 8군 무대를 비롯해 각종 밤무대에서 밴드를 하던 프로였다. 어쨌거나 이듬해 1979년은 노래의 대히트와 함께 10·26 현장에 있었던 일로 해서 심수봉에게 운명의 해가 됐다.

심수봉이 1995년 펴낸 '사랑밖엔 난 몰라'는 국내 자서전 중 솔직성에서 최고일 것이다. 상처투성이 성장기며 숙명처럼 따라다닌 남자들과의 부대낌이 트로트 곡조같이 흐르면서도 고백수기류와 격이 다른 것은 당시 어느 정도는 달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심수봉의 팔자는 처음부터 기구했다. 배다른 형제들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어려서부터 악극단 트럼펫 소리에 가슴이 뛴 것은 소리꾼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란다.

심수봉은 공식 데뷔 전 권력층의 파티에 자주 참석했다. 요즘 말로 하면 접대에 동원된 셈인데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이 주최한 파티에 피아노 반주하러 갔다가 그의 눈에 든 게 계기가 됐다. 책에는 이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언론사주에게서 모욕받은 이야기도 나오니 어째 리스트로 시끄러운 요즘 분위기와 닮았다. 단 매니지먼트 회사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요즘 연예인과는 다르게 당시는 개인 매니저를 두더라도 역할이 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섭외되는 파티 참석은 무명 연예인에게 생계 방편이기도 했다.

그 후 심수봉에게 닥친 신산스런 일들이야 잘 알려진 일. 운명의 터널을 빠져나온 지도 제법된 요즘, 엊그제 기자회견에 나온 그녀의 얼굴에선 독특한 광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남자 배우들이 너무 잘 생겨서 계속 보고 있다는 말에선 이제는 현실과 적당하게 사귈 줄 아는 넉살까지 엿보인다. 작년에는 방송에서 "예수 믿으면 팔자 고친다는 말에 교회에 가게 됐고, 하나님을 믿은 후에 많은 두려움이 사라졌어요"라고 고백했다. 심수봉이 드디어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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