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봄날의 꽃같은 인생사 농익은 글솜씨로 묘사… ‘꽃피는 삶에 홀리다’

[책과 길] 봄날의 꽃같은 인생사 농익은 글솜씨로 묘사… ‘꽃피는 삶에 홀리다’ 기사의 사진

‘꽃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생각의나무

"눈이 나빠져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고 했다. 시야가 좁으면 어떻게 될까. 나쁠 게 없다. 보이는 것만 보면 된다. 귀가 나빠져 병원에 갔다. 의사는 가는귀라고 걱정했다. 괜찮다. 큰소리치기를 바라지 않거니와 들리는 것만 들으면 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았더니 책이 되었다. 보고 들은 바가 적다. 게다가 희고 곰팡슨 소리다."



오랫동안 신문사 미술 기자를 지내고 지금은 학고재 주간으로 있는 저자는 한시와 꽃, 그림과 붓글씨에 한 잔 술만 있으면 썩 잘 노는 사람이다.

스테디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냈으니 미술에 대한 식견이 꽤 넓다. 설렁설렁 이야기를 풀어갈 때는 '헐랭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듯하고 단단한 글솜씨로 정곡을 찌를 때는 '촌철살인'이다.

삶과 예술품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은 이 책은 술 좋아하고 그림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저자의 필체가 올곧이 묻어난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일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가 애송하는 한시와 함께 조곤조곤 들려준다. 예쁜 남자가 득세(?)하는 시대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 비교하며 이들도 제 얼굴에 책임이 있다고 일갈한다.

여행을 떠난 아내가 남편의 옷을 번호까지 매겨 장롱에 걸어두었다는 얘기는 김홍도의 '고승기호'에 비유한다.

"한없는 배려와 드넓은 아량으로 못난 남편을 깨우치려는 것인가. 남편 꼭대기에 오르면 혹 성인의 경지라도 보이느냐"며 "호랑이 등에 탄 아내여, 내려오라"고 하소연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딸 얘기도 나오는데 아들 얘기는 한 줄도 없어 좀 서운하겠다.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가 조선시대 이산해의 '한국화(寒菊花)'를 경매를 통해 50만원에 낙찰받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 교수, 횡재했소이다"라고 감탄하면서도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횡재도 온다"며 안목의 힘을 역설한다. 400년 전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옥봉이라는 여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털어놓은 구절은 가슴 저린 한 편의 연애시를 읽는 셈이다.

혜원의 '소년전홍'을 보자.

"상투 위에 사방관을 쓴 사내는 귀때기 새파란 젊은것이다. 몸종은 벌건 대낮이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인다." 저자는 말한다. "청춘들아, 사랑은 아무나 하고, 아무 때나 해라. 그대들의 발칙한 애정행각을 욕하는 늙은것들 앞에 '소년전홍'을 들이밀어라. 우리에게도 이처럼 사랑에 배고픈, 끈질기게 살아남은 전통이 있었노라 강변하면서."

저자에게 감동과 추억을 주었던 인물들, 동서양의 미술품에 대한 이야기까지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동안 잘 몰랐던 온갖 그림 얘기 보따리를 솔깃하게 풀어보인다. 위작 때문에 명성에 금이 간 이중섭의 소 그림, 알아야 보이는 김홍도의 '씨름', 가난한 화가였던 재덕을 위해 월급봉투를 기꺼이 내어준 조병화의 일화까지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혁림 김춘수 박경리 유치환의 고향인 통영 '쪽빛 바다에 떠도는 한 조각 붉은 마음'을 그린 글이 선연하게 다가오고, 1주일 중에 6.5일은 술을 마신다는 화가 사석원의 그림 감상이 황홀경으로 안내한다. 봄날에 핀 꽃처럼 짧아서 꿈같은 인생사를 솔직담백하고 유머러스하게 털어놓은 저자는 그래서 이 책을 '난잡하고 농탕한 트로트 본색'이라고 말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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