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하지만 순결한 막노동꾼들의 삶”… ‘일포스티노와 빈대떡’ 펴낸 김은자 시인

“누추하지만 순결한 막노동꾼들의 삶”… ‘일포스티노와 빈대떡’ 펴낸 김은자 시인 기사의 사진

"가장 서민적인 음식의 이름인 남대문 시장의 '빈대떡'을 통해 표상된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고 슬기로운 사람들의 순결한 마음, 이것을 시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인부들'이나 '빈대떡'은 참된 시 정신의 구체적인 현현일 따름이다."

시인 김은자(61· 한림대 국문과 교수) 씨가 펴낸 '일포스티노와 빈대떡'(고려대학교 출판부)은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체득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비유를 바탕으로 쓰여진 읽기 쉬운 시론집이다. 제목부터 노릿노릿 잘 구워진 빈대떡 냄새가 풍기는데 실은 그게 바로 시 냄새라는 것이다. 시인 네루다에게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 마리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일포스티노'와 '빈대떡'은 대체 무슨 관계이길래 그의 시론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영화 '일포스티노'는 시라는 것과 전혀 무관하던 한 젊은이가 시(사랑)에 눈뜨고 시인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주된 줄기로 삼고 있지요. 관객의 눈에 보이는 이 시인의 길은 마리오에게는 애초에 의식되거나 의도된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그를 시로 이끌고 다음에는 이 시가 그를 운명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죠. 주객이 전도되는 듯한 이 아이러니 또한 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시인과 연인은 동기간인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를 인용한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이 되어도/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있으므로/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그런 사람들이/이 세상에서 알파이고/고귀한 인류이고/영원한 광명이고/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오늘날 남대문에서 빈대떡으로 허기를 달래는 일용직들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우체국 무급의 배달부 자리를 얻어 네루다가 주는 팁으로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는 마리오와 다를 바 없다. 어느 시대에나 절박한 밥의 문제가 있겠지만 한 장의 빈대떡을 먹을 때 김종삼이 발견한 것은 누추한 생이 안고 있는 사랑과 희망 안에 곁들여진 슬픔과 아픔인 것이며 그걸 노점에서 먹고 있는 인부와 막벌이꾼은 시인의 다른 이름이라는 통찰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빈대떡 타법으로 특유의 시론을 전개하고 있는 저자는 신춘문예 2관왕 출신답게 시와 평론을 통해 소월, 미당, 백석은 물론 한용운, 정지용에 이르는 한국문학의 대표적 시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탁번 한국시인협회장의 부인이기도 한 저자는 5년 전, 남편이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천등산 자락에 지은 원서헌 문학관에 내려가 살고 있다.

정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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