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감성으로 그려낸 ‘사랑의 빛과 그림자’… ‘다른 남자’

절제된 감성으로 그려낸 ‘사랑의 빛과 그림자’… ‘다른 남자’ 기사의 사진

다른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이레

일상의 기본적인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사랑의 빛과 그림자가 간결하고 치밀한 어조로 그려져 있는 소설집이다. 베스트셀러 '책 읽어주는 남자'의 작가답게 여섯 작품이 수록된 소설집의 탁월성은 슐링크가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관계와 소통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데 있다.

표제작은 죽은 아내의 숨겨진 옛 애인이 아내 앞으로 보낸 편지를 받고 질투심을 느낀 나머지 그 애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가운데 자신의 과거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내 아내가 명랑한 여자였다고? 그는 질투심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가 자기가 아닌 그 남자와 있을 때 명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자기와 있을 때보다 그 남자와 있을 때 더 명랑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작가는 '그'와 '다른 남자'를 대조시키며 일상적인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삶의 허구성을 짚어낸다.

또다른 작품 '소녀와 도마뱀'의 주인공은 어렸을 때 낮잠을 자곤 하던 아버지의 서재에 걸려 있던 그림에 매혹된다. 그림에는 유대인 소녀와 도마뱀이 그려져 있다. 소년은 그 소녀를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가슴속에 간직하며 사랑한다. 그 사랑이 더욱 깊어졌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뜨고 소년은 그 그림의 비밀을 캐게 된다. 그 과정에서 2차 대전 중 아버지가 유대인들에게 범한 범죄를 알게 된다. "아버지는 형법전에 나오는 구절을 그대로 베꼈어요. 아버지는 자신이 처벌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 구절들을 베낀 거예요. 하지만 그 글은 아주 섬뜩해요. 모든 것을 시인하는 것 같으면서도 법적으로 처벌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읽히거든요."

아버지를 부정하는 아들의 행동은 아들을 부모 세대가 저지른 죄과에서 벗어나게 해줄까. 작가의 대답은 명확하다. 그 이후의 세대 역시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오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그 영향하에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 상황을 보여준다.

정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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