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삶의향기

[삶의 향기―임한창] 왜 울고 있느냐

[삶의 향기―임한창] 왜 울고 있느냐 기사의 사진

미국의 농아인들은 예수를 수화(手話)로 표현할 때, 오른손 중지(中指)로 왼쪽 손바닥 가운데를 콕 찍는다. 왜 그렇게 하는가. 예수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못 박힌 손'을 생각한 것이다. 아주 적합한 표현이다. 기독교는 못 박힌 손의 종교다. 십자가의 종교다. 보혈의 종교다. 희생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이 존경받는 종교다. 예수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시작돼 무덤에서 완성됐다. 기독교는 절망의 상징인 무덤에서 희망을 보는 종교다.

부활하신 예수의 첫 말씀은 '왜 울고 있느냐'였다. 그것은 질문이나 책망이 아니다. 인류를 향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였다. 이제 더 이상 슬퍼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뛰어넘은 빈 무덤의 승리 선언이었다.

이 놀라운 부활 이야기는 2000년 동안 전세계에 끊임없이 전파되고 있다. 고난의 밤을 맞은 수많은 사람에게 가슴 벅찬 소망으로 회자된다. 만약 이것이 허구이거나 거짓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공명을 일으킬 리가 없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장군이 밸리 포지(Forge) 전투를 벌일 때였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식량은 떨어지고, 군복도 모두 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전염병까지 창궐해 수많은 군인이 쓰러졌다. 워싱턴 장군은 군인들을 모아놓고 외쳤다.

"여름철 군인은 아무 일도 못한다. 햇볕 날 때 애국자는 존경받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는 고통의 날을 이겨낸 사람들에 의해 다시 쓰인다. 민족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싶은가. 그러면 용감한 겨울철 군인이 되자."

추위와 배고픔을 겪어보지 않은 편안한 군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태평성대의 애국자는 아무 쓸모 없다는 메시지였다. 고통의 십자가를 진 사람이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장군은 군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해 포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가 옥중에서 드린 기도는 아주 단순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해주소서." 그는 부활신앙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겨냈다.

이제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고난주간은 부활절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다.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불안정하고, 사회는 혼란스럽다. 지금은 겨울철 군인 같고, 궂은 날 애국자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기독교 역사 120여년 만에 우리처럼 축복받은 나라가 지구상에 또 어디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그저 감사할 일들뿐이다. 은혜의 잔이 차고 넘칠 뿐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구 67억명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한번 가상해보자. 100명의 마을에 사는 사람 중 남자는 48명, 여자는 52명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30명이고,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48명이다. 100명 중 50명은 영양실조 상태이고, 15명은 비만이며, 1명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1명이다. 컴퓨터를 소지한 사람도 1명이다. 주머니에 현금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8명에 불과하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7명이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가. 아침에 눈 뜨면 마실 물이 있고, 누울 집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기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당신을 위해 휴대전화로 편지를 보내온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전혀 글을 읽지 못하는 20억 사람들보다 휠씬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부활절 예배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종교 자유가 없는 30억 사람들보다 행복한 것이다. 지극히 습관화된 우리의 일상이 사실은 온통 축복이다. 부활한 사실을 모른 채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예수는 말씀하신다.

"너는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임한창 종교부장 hcl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