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성만 (1) 사춘기에 찾아온 절망… 그리고 한 줄기 빛

[역경의 열매] 장성만 (1) 사춘기에 찾아온 절망… 그리고 한 줄기 빛 기사의 사진

그때 나는 알았다. 죽음의 빛깔은 어쩌면 황토색이며, 생명의 종착역은 흙이라는 것을….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아버지를 흙에 묻었다. 다정다감한 목소리도 이제 더이상 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체취도 사라져버렸다. 너무나 갑자기 닥친 가족의 재앙이었다. 그것은 세상을 모두 잃은 슬픔이었다. 지금껏 가족을 떠받쳐온 견고한 기둥이 쉰을 1년 남긴 채 한 줌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갔다. 중학교 2학년 소년에게는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충격이었다.

1946년 여름. 그해 하늘은 온통 우울한 잿빛이었다. 해방의 기쁨을 송두리째 앗아간 불행한 계절이었다. 당시 전국에 창궐하던 콜레라가 아버지를 급습한 것이다. 아버지는 콜레라를 앓은 지 나흘 만에 하늘로 떠났다. 새로 시작한 사업의 마무리를 눈 앞에 둔 채…. 인생이 뭔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 삶은 이토록 허무한 것인가. 가슴 속에 염세주의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소년 가장.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두 누님과 동생 셋. 나는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됐다. 지금껏 경제적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온 가족에게 혹독한 풍랑이 불어온 것이다.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가족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이렇게 대단했던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얼 먹고 살 것인가. 누굴 의지하고 살아야 하나. 이 무거운 인생의 짐을 어찌할 것인가.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한 가정의 장남인 나는 수심(愁心)의 나날을 보냈다.

어느날 밤, 한 여인의 애끊는 절규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어느 짐승의 처절한 통곡과도 같았다. 어둠 속에서 꺼이꺼이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하나님, 우리 성만이가 절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저 어린 것이 얼마나 상심이 크겠습니까. 성만이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집 가장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성만이의 아버지가 돼주세요."

그것은 할머니의 기도였다. 울음 반, 기도 반의 처절한 절규였다. 할머니는 우리 가문의 아브라함이다. 첫 신자인 것이다. 청상과부(靑孀寡婦)로서 고달프고 외로운 인생을 살아온 여인이었다. 질곡의 인생을 담배연기에 날려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던 할머니가 예수를 믿어 초기교회 신자가 된 후, 긴 담뱃대를 부러뜨려 아궁이에 던져버렸다. 할머니의 손에는 담배 대신 성경과 찬송가가 들려졌다. 원래 무학이었으나, 예수를 믿은 후 글눈이 떠져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이 모두 교회에 출석한 것은 할머니의 전도 때문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할머니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때 할머니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순간 지금껏 참아왔던 슬픔의 둑이 일시에 붕괴돼 통곡의 강물이 범람했다. 할머니의 품에서 서럽고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열다섯 살 사춘기 소년은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며 한숨처럼 기도했다. "하나님, 성만이에게 용기를 주세요. 우리 성만이…."

얼마나 울었을까. 가슴이 후련해졌다. 그때 할머니가 내 손을 끌며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실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걱정 마라. 이제 찬송을 부르자." 그것은 심야 부흥회였다.

"성령이여 강림하사/나를 감화하시고/애통하며 회개한 맘/충만하게 하소서/예수여 비오니/나의 기도 들으사/애통하며 회개한 맘/충만하게 하소서"

나는 절망의 심연에서 한 줄기 강렬한 희망의 빛을 보았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누구인가

△1932년 부산 출생 △미국 미드웨스트대학 신학박사 △동서대·경남정보대·부산디지털대 설립자 △제11, 12대 국회의원 △전 국회 부의장 △그리스도의교회 목사 △대교 그리스도의교회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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