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용웅] 소한테 배워라 기사의 사진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 읽기라는 이 사자성어는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은 소를 제대로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소는 우직하면서도 주인 말을 잘 듣는 동물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나는 여름이면 소를 몰고 들과 산으로 자주 갔다. 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기 위해서다.

한 10년 정도 '한 솥밥'을 먹은 소는 산과 들에 풀어만 놓아도 해질 무렵이면 십리 먼길을 알아서 집으로 찾아왔다. 또 쟁기질이라도 할 때면 말이 필요없다. 코뚜레에 연결된 줄만 당기고 흔들어도 소는 주인 마음을 알아채고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간혹 내가 말을 듣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소보다도 못하다고 야단치기 일쑤였다.

요즘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독립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늙은 소는 할아버지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어째서 우이독경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한 해를 싸움질로 보낸 국회의원들은 새해 들어서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불안한 경제상황에서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개과천선할 것을 간절히 바랐지만 이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 막무가내다.

올해는 작년보다 경제가 더 어렵다. 우리 경제가 언제 저점을 찍을지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최근 들어 다소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환율시장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달러당 1600원 턱밑까지 치솟았다. 하루에도 수십원씩 오르락내리락했다. 외환당국은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수입업체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미친 듯이 오르는 환율 때문에 여성 의류수입업체 사장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까지 내버렸다. 시골에서 유학 온 20대 후반의 명문대생 역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세상을 등져버렸다. 영세자영업자들은 자고 나면 문을 닫고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마구 쫓겨나고 있다.

국민들이 경제불황에 이처럼 처절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국회의원들은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하는 듯하다. 싸움 말고는 별로 한 일 없이 어영부영하다 2월 임시국회 문을 닫은 국회의원들은 회기가 끝나기 무섭게 가방을 메고 해외로 나가기 바빴다. 의원외교라는 제법 그럴싸한 미명 아래 앞다투어 해외로 나간 이들은 고환율에 푹푹 쓰러지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올 들어 벌써 100명 이상이 해외에 갔다왔다는 소문도 나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의원외교 명목으로 잡힌 예산이 지난해 49억7000만원, 올해 49억5500만원에 이른다. 국민의 혈세를 제 쌈짓돈처럼 아무런 거리낌없이 들고 나가는 이들이 과연 해외에서 무엇을 배우고 오는지도 의심스럽다.

근 한 달 만에 열린 4월 임시국회도 출발부터 삐걱거리는 꼴을 보면 이들은 그냥 해외에서 달러나 쓰고 뇌물 받는 것만 터득하고 오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돈을 받아 챙기는 데는 수준급이 됐고 뇌물 스캔들에도 단골손님이 됐다. 그래놓고도 이들은 입만 뻥긋하면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정말 낯 두꺼운 사람들이다. 국회의원들이여! 진정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하려면 먼저 소의 충직함부터 배우기를 바란다.

이용웅 경제부장 y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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