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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정원교] 침묵의 살인자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여의도 라이프 빌딩의 공통점은? 둘 다 이미 사라졌다는 것. 하나는 9·11테러로 무너졌고, 다른 하나는 폭파 해체공법으로 철거됐다. 그리고 또? 건물이 무너질 당시 엄청난 석면 먼지가 발생했다는 사실. 하지만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 대한 미국과 우리의 대응은 확연히 달랐다.

미국 정부는 이와 관련해 붕괴 현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등 다각적으로 대처했다. 이에 비해 라이프 빌딩 해체 과정은 한 마디로 무방비였다. 건물 주변 시민들은 다량의 석면 먼지를 들이마셨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석면의 위험성을 본격적으로 폭로한 '침묵의 살인자 석면'이라는 책은 한국과 미국의 현실을 이렇게 대비시켰다. 라이프 빌딩이 2001년에 발생한 9·11테러보다 7년 전인 1994년에 철거된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비교라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면 지금이라고 해서 석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을까. 석면에 오염된 탈크(활석)가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가 하면 서울지하철 일부 역사에서도 석면 가루가 검출되는 현실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금까지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석면 오염 탈크를 사용한 화장품 업체 명단을 발표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서울지하철역 4곳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시민단체의 발표에 대한 당국의 태도도 비슷했다. 서울메트로는 최근 석면에 대한 안전조치도 없이 지하철 역사 내에서 스크리도어 등을 설치하는 공사를 벌였다고 환경단체가 지적하자 문제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기에 바빴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 석면폐증(석면으로 인해 폐의 섬유화를 초래하는 질병)이나 악성 중피종(中皮腫) 등을 유발한다. 학자들은 석면에 한번 노출되면 질병이행은 계속되며 20년 가량 지나면 석면폐나 암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부 고시에 의해 올해부터 석면 함유 제품의 제조 수입 사용 등이 전면 금지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석면 피해자 발생이 멈추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제 석면 피해자들이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석면이 '침묵의 살인자'로 악명을 떨치는 데도 당국의 대응은 굼뜨기만 한 것 같다.

정원교 논설위원 wkc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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