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종원] 무엇이 뉴딜인가? 기사의 사진

최근의 경기침체 극복방안과 관련하여 제시된 처방 중 내수산업의 활성화방안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국제 경제여건 급변 시 그 충격이 여타국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경제침체기에 들어서고 있어 수출 진작이 어렵다는 사유들이 곁들어 지적되곤 한다.

본디 내수 진작이란 가계가 건실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때 30%를 상회하였던 한국의 저축률은 6%대로 주저앉았고 그나마 가계부실이 늘어나면서 저축에서 가계부채를 차감한 순저축률은 2%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예전에 비해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행태, 즉 빚을 내가며 소비를 확대하는 추세가 정착된 것이다. 실물부문의 성장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대된 금융서비스 거품이 이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

건설 통한 경기회복 기대 난망

4대강 정비 위주의 녹색성장이나 공공사업을 통한 뉴딜정책으로 장기적 성장 잠재력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내수 활성화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더구나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그동안 과잉투자로 인해 부실화된 건설 회사를 구제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공공 건설투자 촉진이 고려되었다면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건설을 통한 경기회복이란 경제발전 초기 단계의 후진국이라면 몰라도 현재 대한민국에 걸맞은 방법이 될 수는 없으며, 그것이 성장잠재력이나 국제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은 더욱 아닌 것이다. 건설부문은 오히려 금융 산업의 부실을 촉발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을 안고 있는 부문으로 첫번째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야 할 부문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뉴딜정책을 대단위 공공사업 위주의 정부정책으로 알고 있다. 미국 테네시강 하역 개발 사업만을 연상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뉴딜이란 트럼프의 카드를 새로 나누어 준다거나 새로운 게임을 한다는 뜻으로 1933∼39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공황극복을 위해 실시한 일련의 경제정책을 총칭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1928∼32년 토목사업 회계담당자 출신인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감세 및 대기업 위주정책과 금산분리 완화 등을 도모하다 초래한 위기를 시정하기 위해 채택한 정책기조의 전환이다. 동시에 증세, 금산분리 등의 금융규제강화, 노동자 권익 보호,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위한 정부개입의 강화로 특징 지워지는 수정자본주의 노선의 채택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단지 토목공사를 통해 경기회복이나 고용창출 그리고 성장잠재력 제고 내지 국제경쟁력 강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그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뉴딜 또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울러 항간에 이미 몰락해버린 극단적 신자유주의(슈퍼자본주의) 정책만이 경기회복의 유일한, 그리고 새로운 대책인 양 무조건적 규제 완화만을 주장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이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본질적 체질 개선에 힘써야

현실문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한 적절한 인식의 전환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기극복을 위한 정부의 리더십과 신뢰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이다. 지금의 위기는 단시일 내 극복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단기 성과 위주의 정책이 비록 반짝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해도 본질적인 해결책은 될 수가 없다. 성과가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더라도 조급함을 버리고 본질적인 체질개선에 나서야 할 때이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도 10여년이 경과해서야 비로소 이렇다 할 성과가 나타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종원(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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