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성만 (4) 美 선교사 도움받아 일본 신학교 유학

[역경의 열매] 정성만 (4) 美 선교사 도움받아 일본 신학교 유학 기사의 사진

마크 맥시(Mark G Maxey).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이름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이 타인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봉사할 수 있는지를 삶으로 보여준 선교사다. 원래 그는 미군 종군목사로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전역한 후 일본 선교사로 파송받아 규슈 남단 가노야에서 교회를 개척해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6·25 전쟁으로 처참한 상황에 처한 한국의 소식이 궁금해 방한했다. 그때 나를 만난 것이다. 나는 이 만남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수호천사였다.

"장성만 목사, 좀더 웅대한 꿈을 가져라. 세계는 아주 넓다. 일본에 유학와서 공부할 생각은 없는가. 내가 너의 모든 삶을 보장하겠다."

그는 스무 번도 넘게 한국을 찾았다. 내 가슴 속에 '신학의 바다'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심어주었다. 외국유학?그것은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땅에 사는 젊은이가 꿈꿀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당장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외국유학도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장5∼6절)

유학의 꿈을 갖고 계속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수록 꿈의 그림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힘이었다. 기도는 '추상화'를 '정물화'로 만드는 힘이 있다. 마음은 벌써 일본의 어느 신학교 교실에 앉아 있었다. 외국인 교수들의 강의에 심취해 있었다. 학문의 바다에서 새로운 지식을 포향(飽享)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가자, 일본으로 가자. 하나님이 내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나는 일본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맥시 선교사에게 그 뜻을 전했다.

"일본에서 공부하게 해주세요."

"참 잘 생각했다. 어서 오너라."

일본 오사카의 성서신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내 앞 길은 첩첩산중이었다. 당시 한·일 외교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비자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맥시 선교사는 수십 번 일본 법무성을 찾아가 비자발급을 요청했다. 규슈에서 도쿄를 오가며 보낸 시간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왜 유학을 가는가. 나의 유익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조국을 위해서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후자였다. 신학문을 배워 조국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리라. 이 민족의 가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리라.

규슈행 배에 몸을 실었다. 당시엔 일본행 비행기가 없었다. 부산을 출발한 배는 20시간이 넘게 바다에 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소년가장에게 일본 유학이 웬 말인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였다.

"내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예수 없는 인생, 예수 없는 젊음은 얼마나 허허로운가. 일찍 신앙을 가진 것이 최고의 축복이다. 나의 인생은 하나님이 원격조종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사야 41장 10절을 속으로 묵상하면서 힘을 얻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것은 두려움 없는 도전이었다. 일본 유학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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