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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손수호] 천리포 수목원


연구장소로 여겨지던 수목원이 즐거움의 대상이 된 계기는 영화 '편지'의 흥행이다. 1997년 이정국 감독이 만든 이 영화에서 최진실과 박신양 커플이 살림을 차린 곳이 수목원이었다. 촬영은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이뤄졌다. 애잔한 러브 스토리와 그림 같은 풍경이 어우러지면서 수목원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섰다. '수목'은 산림이라는 용어에 비해 한결 포근했다.

국립수목원 연구사 직함으로 식물에 관해 아름다운 글을 많이 발표한 이유미씨도 수목원을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공로자다. 꽃과 나무를 소재로 한 책이 한동안 붐을 이뤘다. 이후 상업성을 띤 수목원이 경쟁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정보사회의 피로증이 겹치면서 휴양공간으로 인기를 끌었다.

국내 최초의 국립수목원은 서울 청량리의 홍릉수목원이다. 1922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이후 산림연구의 본산이었다. '입산금지' 팻말이 오랫동안 붙어 있다가 1993년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만큼 나무가 울창하고 관찰코스도 좋다. 규모로는 경기도 포천의 광릉수목원이 으뜸이다. 홍릉수목원의 10배가 넘는 150만평 에 최근에는 산림욕장과 야생동물원까지 들였다.

민간수목원의 효시는 1971년에 문을 연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 1945년 미군 통역장교로 한국에 왔다가 눌러앉은 미국인 칼 밀러(한국명 민병갈·1921∼2002)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가꾼 18만7000여평 지상낙원이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 처음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인증을 받았다. 운영방침은 비공개.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숲이 아니라 나무를 위한 숲'이라는 원칙 때문이다.

40년 가량 속살을 숨기던 시크릿 가든이 이달부터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심각한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들의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키로 한 것이다. 주말 어른 기준 8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민병갈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수목원은 그저 식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이나 정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개방은 하되 설립자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한국의 명소로 가꿔야겠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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