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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요금이 또 오른단다. 성격이 다혈질인 아무개가 신문을 보다가 이 기사를 읽고 화를 버럭 낸다. "이런 ×× 같은 ○○들. 요금을 또 올린다고?" 분을 참지 못한 그는 신문에 항의성 글까지 투고했다. "이번 택시 요금 인상은 서민을 생각하지 않은 처사다."

두 경우의 어투가 다르다. 하나는 육두문자가 섞였고, 다른 하나는 꽤 점잔을 뺐다. 말로 할 때와 글로 쓸 때의 표현 양태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어설픈 결론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말은 감정을 드러내고 글은 감정을 절제한다.'

그런데 이런 결론이 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글이라도 인터넷 댓글은 다르다. 입에 담기조차 힘든 험담이 모니터 화면에 그득하다. 댓글이 정제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쓴이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19세기 독일의 슈타인탈이란 언어 심리학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언어는 개인의 심리의 표현이며, 언어공동체 전체의 언어는 집단 심리의 표현이다.' 예를 들어 가명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상대를 부를 때 "야"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여보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인격의 높고 낮음을 분별해 주고, 집단적으로는 사회의 건전성과 비건전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사회가 언어를 이끄는지, 언어가 사회를 이끄는지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가리는 것과 같다. 분명한 것은 정제되지 않은 댓글 문화가 언어 폭력을 낳고, 이는 폭력적 사회로 나아가는 데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한데 요즘은 인터넷 댓글과 같은 수준의 언어가 실명을 달고 글로 나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 문제로 실망을 안겨주는 상황에서 이를 나무라는 말들이 듣기 거북하다. 어느 정치인은 '추악한 뒷거래'니 '대국민 사기극'이니 했다. 또 전직 대통령은 '장래에 형무소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전부'라고 비꼰다. 그들이 공인이다 보니 말이 그대로 활자화됐다. 꼬집어도 될 걸 굳이 매를 든다.

그들에게 언어 예절을 배우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앞에 언급한 언어학자의 말을 떠올리면 다소 민망해진다. 개인의 심리가 집단의 심리로 변질될 것 같아서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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