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성만 (7) 귀국후 첫 설교 계기 평생 배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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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은 컴퓨터보다 치밀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하나님은 헤아리신다. 나는 그것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부른다. 내 삶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었다.

1962년 1월 첫주일. 나는 모교회인 부산 항서교회의 새해 첫 설교를 맡았다. 김길창 목사님의 특별한 배려였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나를 교인들에게 소개하려는 의도도 있었으리라.

"장성만 목사, 자네가 원단(元旦)설교를 해주게." 원단설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 목사님은 나에게 특별한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날 예배를 통해 아주 소중한 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당시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던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그녀는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토플점수도 확보해 놓았다. 유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심한 반대 때문에 미국 유학의 꿈을 접어버렸다.

"여자가 무슨 유학이냐? 혼자 외국에 나가는 것은 절대로 용납 못한다."

그녀는 나의 설교를 듣고 용기를 냈다. 내가 일본 유학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집회가 끝난 며칠 뒤, 유학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첫눈에도 아주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교양있는 가정에서, 격조있는 교육을 받은 기품이 풍겨나왔다.

"목사님, 저도 일본 유학을 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왜 일본입니까. 아예 미국으로 가시지요." 진지한 질문에 가벼운 대답이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안돼요. 내가 미국에 간다고 하면 집에서 난리가 날 거예요. 사실 일본 유학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녀는 유학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고,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헤어질 때, 내가 쓴 책 '생각잃은 갈대'를 선물로 주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일단 끝났다. 그런데 내 책을 읽고 그녀가 독후감을 보내왔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조금씩 신뢰를 쌓아갔다. 그리고 나는 일생을 함께 할 반려자가 되어달라고 프러포즈를 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허락이 먼저라고 했다.

박동순.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이다. 장인 박정수씨는 오랜 판사생활을 거쳐 부산시변호사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장모 최정선 권사는 부산YWCA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일찍 사회활동에 눈을 뜬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유학을 엄격하게 반대했을 정도니, 당시 한국인의 의식이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능히 유추할 만했다. 일단 장인될 분을 만났다.

"저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넓은 세상에서 많은 지식을 배워 조국을 위해 봉사할 것입니다. 특히 고급기술을 가진 젊은이를 많이 양성해 조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따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도 있습니다."

"좋다. 자네가 맘에 든다."

나의 책을 그분도 읽었다고 했다. 그것이 도움이 됐는지 너무도 쉽게 승낙을 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 둘이었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좋은 배필을 예비해두신 것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한복음 14장 1절).

우리는 한영교 박사를 모시고 성대한 약혼식을 올렸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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