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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문일] 左와 右의 서열


유성룡과 김성일의 위패를 좌우 어디에 배치하느냐를 놓고 400년 동안 다툰 영남 유림의 일대사(一大事), 병호시비(屛虎是非)가 김성일 후손의 양보로 매듭을 지었지만 왜 왼쪽이 오른쪽보다 상석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위패 자리뿐 아니라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윗자리인데서 보듯 왼쪽을 높이는 우리의 상좌(尙左) 풍습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

조선 사대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중국의 예를 보면, 청(淸)의 역사가 조익(趙翼)은 한(漢) 이전은 상우(尙右), 그 후 원(元)을 빼고 모두 상좌라고 주장했다. 한 이전 하은주(夏殷周)는 상좌, 전국진한(戰國秦漢)은 상우라는 설도 있다. 예컨대 벼슬이 낮아지는 좌천(左遷)이란 말은 사기와 한서에 나오지만 그 후에는 용례가 거의 없다.

삼국(三國)과 육조(六朝)에서는 노장(老莊)의 청담(淸談)이 유행했고, 당(唐)에서는 왕족 이(李)씨와 성이 같은 노자를 높여 도교가 크게 진작됐다. 도덕경에는 "군자가 거(居)함에 귀좌(貴左)하고, 용병(用兵)은 귀우(貴右)하며, 길사(吉事)에는 상좌하고 흉사(凶事)에는 상우한다"는 구절이 있다. 용병은 흉사로 보아 상사(喪事)에 준해 상우를 해 장군이 우, 부장이 좌에 자리했다. 근대 이전 중국인의 정신규범은 유교지만 생활규범은 도교이다. 중국이 상우에서 상좌로 전향한 시기는 도교의 흥성기와 일치한다. 고려의 관직도 좌를 높였는데 송(宋)으로부터 중국 문화가 유입되면서 상좌 풍습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유럽에서는 로마 제국이 칼 잡는 오른손을 높인 이래 상우이고, 이슬람권에서는 왼손을 부정하게 여긴다. 태극기는 건물 밖에서 보아 왼쪽에 게양하는데 건물 안에서 보아 오른쪽에 걸도록 한 유럽 방식을 따른 것이어서 우리의 상좌 전통에 어긋난다. 호계서원의 위패는 이황의 위패에서 보아 좌에 유성룡, 우에 김성일이 자리하게 된다.

최근 서울대 박효종 교수가 우리나라의 '진보와 보수'는 말과 실체가 부합하지 않는다며 '좌파와 우파'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상좌 전통에서 보듯 우리에게 왼쪽 콤플렉스(Left Complex)가 있을 리 없으니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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