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성만 (8) 미국 유학 도착하니 설교 초청 편지 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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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9월. 미국에 도착했다. 원래 약혼자 박동순과 함께 미국에 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약혼자의 비자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혼자 온 것이다. 참으로 길고 긴 여행이었다. 여의도비행장을 출발해 도쿄와 호놀룰루에서 비행기에 급유를 한 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사흘을 달려 오하이오주에 도착했다.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첫째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사흘 동안 먹은 것이라곤 바나나 몇 개뿐이었다. 둘째는 시차로 인한 피로 누적이었다. 1주일 동안 편안하게 누워서 자본 적이 없었다.

드디어 신시내티에 도착했다. 신시내티 신학대학교는 오하이오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캠퍼스였다. 기숙사에 짐을 풀어놓고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거의 24시간 동안 잠을 잤다. 그동안의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우편배달부였다. 그는 한 보따리나 되는 우편물을 전해주었다.

"편지와 소포가 참 많습니다."

미국의 여러 교회에서 온 편지였다. 주로 설교 부탁을 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이곳에 올 줄 어찌 알고 편지를 보냈을까.

일단 대학원장인 루이스 포스터 박사부터 찾아갔다. 하버드 출신의 루이스 포스터 박사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장 목사, 당신을 많이 기다렸다. 장 목사에게 기대가 크다. 일단 교수 두 사람을 소개해주겠다."

그는 엘리오트 교수와 심스 교수를 소개해줬다. 그리고는 자신의 부친인 R C 포스터 교수에게 나를 데려갔다. 여든이 넘은 포스터 교수는 신약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그는 마치 손자를 맞이하듯 정겹게 나를 반겼다.

"축하한다. 잘 왔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뭐든지 내게 부탁하라."

그는 자신이 쓴 '예수의 생애'(Life of Christ)라는 책에 사인을 해서 내게 선물했다. 3권으로 된 이 책은 신학을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그후에도 자주 나를 초청해 저녁을 대접하고 격려했다. 하나님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서 역사하신다. 왜 그들은 생면부지인 내게 그토록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을까.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준비한 로드맵에 따라 나의 삶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신학대학원 공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거의 매일 리포트를 작성했다. 짧은 영어로 논문을 준비하고, 그것을 발표하는 일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허덕이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이곳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우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에게 참 생소했다. 대한민국은 전쟁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 아주 참담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한국의 젊은이가 유학을 왔어? 그 참담하고 암울한 코리아에서?"

나는 신시내티에서 가장 분주한 학생이었다. 미국 20여개 주의 교회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했다. 서투른 영어로 한국의 참상을 또박또박 알렸다. 그들은 내 말에 때로는 눈물을 흘렸고, 때로는 활짝 웃었다. 일제 치하와 6·25전쟁의 역사를 넘어 극한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다. 나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집회를 인도했다.

그 힘겨운 시기에 낭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모든 고통을 일시에 날려버린 기쁜 소식이었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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